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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문학인특집 / 2 민족문학인 ‘변영로’)

역사야톡 2019. 8. 8. 16:0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문학인특집 / 2 민족문학인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1922년 ‘신생활(新生活)’에 변영로가 발표한 시 ‘논개’의 일부이다

 

논개(論介)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의 촉석루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文助)'를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날려 순국한 의기(義妓)이다 논개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전하기 위해 그녀가 떨어진 바위에 ‘義巖(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변영로(卞榮魯)는 경기도 부천 출신으로 YMCA 영어학교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졸업했다 16세 때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했다 20세 때 중앙고보에 영어교사로 재직 중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했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압수되어 폐기처분됐다 잡지 신가정(新家庭)의 편집장으로 ‘조선의 건각健脚’이라는 제목으로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여 일본을 조롱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에서 모든 작품을 검열하고 작품에 붉은 줄을 그으며 첨삭하자 ‘굶어 죽을지언정 뼈 없는 글을 쓰지 않겠다’며 붓을 꺾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해방 이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1955년 수필 ‘不惑(불혹)과 不動心(부동심)’이 공자와 맹자를 비판했다며 유림에서 크게 반발하는 필화사건으로 성균관대학교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변영로는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변영만 교수와 국무총리를 지낸 변영태의 친동생이다 ‘술이라 하면 시인 변영로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시인 오상순을 뛰어넘을 자가 없다’라는 유행어가 전해진다

 

홍난파의 안방에서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을 자다가 물을 마시려고 마루로 나섰다가 아낙네들 위로 넘어져서 난리가 난 적도 있다 ‘변영로는 벌거벗은 채로 소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다 순경에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피천득은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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