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 호남의 정자① 화순 물염정(勿染亭)과 김삿갓
[역사 속 전라도] 호남의 정자① 화순 물염정(勿染亭)과 김삿갓
화순은 삼한시대 마한과 삼국시대 백제에 속했고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화순, 능주, 동복 지역이 폐현과 복현을 반복했다. 1632년 인조반정 직후 인조의 생모인 인헌왕후의 관형이라 능주가 목으로 승격했고 1914년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부활했다. 화순군은 인구 4만여 명이 거주하는 광주광역시의 위성도시로 너릿재로 연결됐고 무등산 국립공원이 솟아있고 영산강과 섬진강이 흐른다.
너릿재는 광주광역시 동구와 화순군 화순읍 사이에 잇는 고개로 너릿재터널과 신너릿재터널이 있다. 광주와 화순, 보성, 장흥, 고흥을 연결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처형된 농민군의 널을 끌고 지나가서 너릿재가 되었다고 전한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유배지로 가던 길이고, 기축옥사로 조대중이 처형된 곳이다. 1946년 노동자가 미군에 학살된 곳이며, 1980년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화순적벽, 중국 적벽에 버금간다
화순적벽(和順赤壁)은 동복천의 상류인 창랑천에 있는 크고 작은 절벽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기암절벽이다. 기묘사화로 신재 최산두가 동복으로 유배 와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서 이름을 따서 중국 후베이성 자위현에 있는 양쯔강 중류의 적벽(赤壁)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화순적벽이라 명명했다. 화순적벽은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으로 구성됐다.
최산두(崔山斗)는 전라도 광양에서 북두칠성의 광채를 띠며 태어나서 산두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버지는 정2품 한성판윤 최한영이고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4품 사인(舍人)으로 승진하여 기묘사화로 동복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김인후와 유희춘에게 사사를 받았다. 문장이 뛰어나 유성춘(柳成春) 윤구(尹衢)와 함께 '호남삼걸(湖南三傑)'이라 하였다.
화순적벽은 1985년 동복댐 완공으로 노루목적벽 일부가 수몰됐고 상수원보호 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또한 30여 개의 정자 중에서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을 제외하고 모두 수몰됐다. 최근 사전예약제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화순적벽은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로 지정됐고 화순 8경 중에서 제1경으로 손꼽히는 절경이다.
물염정,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
송정순(宋廷筍)은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구례현감, 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사색 당쟁이 시작하자 화순 동복으로 낙향하여 물염적벽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언덕에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라는 뜻으로 물염정(勿染亭)을 짓고 여생을 마쳤다. 물염정을 중수하며 다듬지 않은 배롱나무 기둥을 그대로 사용했다. 물염정은 송정순이 외손자인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어 보존하고 있다.
김병연(金炳淵)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난 당시 투항한 죄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김병연은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별시에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를 써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김병연은 조상을 모욕한 자책으로 벼슬을 포기하고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여 김삿갓이라 불렀다. 김병연은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방랑했던 방랑을 멈추고 화순 물염정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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