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구려왕 특집 / 4 쫓겨난 폭군 봉상왕)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구려왕 특집 / 4 쫓겨난 폭군 봉상왕)
10대 산상왕(山上王)은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신상왕은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왕비 우씨와 공모하여 즉위하여 형사취수제에 따라 형수를 왕비로 삼았다 수도를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했다
11대 동천왕(東川王)은 아버지는 산상왕이고 어머니는 관노 출신이다 위나라 2대 명제가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환도성을 함락하자 동천왕은 옥저로 도피했다 동천왕은 임시로 평양성을 쌓고 수도를 일시 천도했다
12대 중천왕(中川王)은 동천왕의 아들이며 동생의 반란을 진압하여 처형했고 투기가 심한 왕비를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 바다에 수장했다 위나라의 침략을 물리쳤고 졸본에 시조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렸다
13대 서천왕(西川王)은 중천왕의 아들이며 부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다 성품이 총명하고 인자하여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숙신을 침략을 동생 달가(達賈)가 막아냈고 동생 일우(逸友)와 소발(素勃)이 역모를 꾸미자 처형했다
14대 봉상왕(烽上王)은 서천왕의 아들로 교만하고 방탕하며 숙부인 달가와 동생인 돌고를 살해하고 조카 을불을 죽이려 하였다 봉상왕이 흉년에도 궁궐을 증축하자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폐위했다 봉상왕은 두 아들과 함께 자결했다
15대 미천왕(美川王)은 서천왕의 손자이자 돌고(咄固)의 아들이다 돌고가 봉상왕에게 살해되자 소금 장수로 변장하고 은둔했다 국상 창조리(倉租利)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어 낙랑군을 멸망시키고 고구려 전성기의 기초를 마련했다
창조리(倉助利)는 봉상왕 재위 중에 국상이던 상루가 죽자 국상(國相)에 임명됐다 전연(前燕)이 침략하여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창조리는 고노자(高奴子)를 천거하여 침략을 막았다
봉상왕은 왕위계승과정에서 숙부인 달가(達賈)와 동생인 돌고(咄固)를 살해했다 고구려에 우박이 내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가뭄이 계속됐다 하지만 봉상왕은 궁궐을 개축했다 봉상왕의 폭정으로 민심이 돌아섰다
창조리는 봉상왕에게 "임금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어진 임금이 아니요,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며 간언했다 창조리는 봉상왕에게 쫓겨난 을불을 새 왕으로 세우기 위해 전국에 관리를 파견했다
창조리는 봉상왕을 별실에 가두고 폐위시키고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을 미천왕으로 옹립했다 반정 이후 행정은 기록되지 않는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폭군 봉상왕을 잡아 죽였다는 이유로 반역열전에 기술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고구려왕특집 #봉상왕 #창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