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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예송논쟁)

역사야톡 2023. 1. 22. 19:5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예송논쟁)

송시열은 성리학자이자 노론의 영수이며 이언적 이이 이황 김집 박세채와 더불어 문묘와 종묘에 종사된 6현 중에 하나이다 효종과 현종의 세자 시절 스승으로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했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서 8년 만에 귀국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을 대신하여 차남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여 정통성 시비의 단초를 만들었다 결국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했다

효종이 사망하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예송논쟁이 일어났다 장자의 예를 따르면 참최복인 3년 복이고 차남의 예를 따르면 기년복인 1년 복이다 현종의 아버지 효종에 대한 정통성 논쟁으로 당쟁이 극렬했다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은 효종은 인조의 소현세자의 동생으로 제2왕자인 중자라고 주장했다 윤휴를 비롯한 남인은 효종은 소현세자를 대신하여 왕위를 계승하여 장남이라고 주장했다 1차 예송논쟁에서 송시열이 승리하여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윤선도는 송시열이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상소를 올려 송시열을 역적으로 규탄했다 송시열은 윤선도가 예론을 빙자한 흉악한 모함을 하고 있다며 함경도 산수로 유배를 보냈다가 전라도 광양으로 이배했다

다시 효종비가 사망하자 예송논쟁이 재현됐다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은 효종비는 차자비이므로 9개월복을 주장했고 윤휴를 비롯한 남인은 효종비는 장자비이므로 1년복을 주장했다 2차 예송논쟁에서 윤휴가 승리하여 남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송시열은 예송논쟁에 패배하고 함경도 덕원으로 유배되어 경상도 장기로 이배됐다 숙종의 경신대축척으로 해배되어 충청도 화양동으로 돌아갔다 장희빈의 아들의 원자 책봉에 반대하여 다시 제주도로 유배됐다

송시열은 제주도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정읍에서 83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고 사사됐다 서인이 집권하자 신원되어 영의정으로 추증됐고 문묘에 종사됐다

송시열은 명나라를 정벌한 청나라를 원수로 보았고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만동묘를 세웠다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며 허목 윤휴 윤선도 윤증 박세당 등을 사문난적으로 매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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