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민족의 노래 / 5 혈서지원)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민족의 노래 / 5 혈서지원)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한글자 쓰는사연 두글자 쓰는사연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피를 흘려서
태극기 그려놓고 천세만세 부르자
한글자 쓰는사연 두글자 쓰는사연
대한민국 국군 되기 소원합니다
1943년 발표된 혈서지원은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노래한 대표적인 친일가요이다 1953년 리메이크된 혈청지원가는 대한민국 군가로 불렀다 2006년 국가보훈청의 추억의 군가로 지정됐다
나라님은 일본 124대 쇼와 덴노를 가리키며 본명은 히로히토(裕仁)이며 1926년 아버지 다이쇼 텐노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1989년까지 재위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연합군에 항복했다 모든 실권을 빼앗겼다
조명암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알뜰한 당신, 신라의 달밤 등 대중가요와 아들의 혈서, 아들의 혈서 등 친일가요를 작곡했다 해방이 되자 월북하여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을 창작했다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됐다
박시춘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애수의 소야곡,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대중가요를 작곡했고 결사대의 안해,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등 친일가요를 불렀다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됐다
남인수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애수의 소야곡, 가거라 삼팔선, 무너진 사랑탑 등 대중가요를 불렀고 혈서지원, 그대와 나, 아들의 혈서 등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고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의 두 번째 남편이다
박향림은 함북 경성 출신으로 오빠는 풍각쟁이, 막간 아가씨, 코스모스 탄식 등 대중가요를 진두(陳頭)의 남편, 총후(銃後)의 자장가 등 친일가요를 불렀다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하다 25세에 요절했다
백년설은 경주 성주 출신으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대중가요를 불렀고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 등 친일가요를 불렀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고 아내의 노래를 부른 심연옥의 남편이다
20세까지 지원이 가능한 괴뢰 만주국 군관학교에 23세 다카키 마사오가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다카끼 마사오)' 라고 혈서를 쓰고 지원했다 1939년 3월 31자 7면 만주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이다
다카키 마사오는 혈서 덕분에 군관학교에 합격하여 3등으로 졸업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육사 졸업 후에 관동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로 해방을 맞이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이어 18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다
13세 김영삼은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로, 15세 김대중은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23세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했다 다카키(高木)는 고령 박씨이고 마사오(正雄)는 정희(正熙)를 변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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