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진흥왕 특집 / 2 창녕 진흥왕 척경비)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진흥왕 특집 / 2 창녕 진흥왕 척경비)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비화가야를 정복하고 창녕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내용과 중앙관과 지방관이 합심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라는 유시를 담고 있다 561년에 세운 비석으로 국보 제33호로 지정됐다
창녕 진흥왕 척경비(昌寧 眞興王 拓境碑)는 창녕읍 목마산성(牧馬山城) 서쪽 기슭에 세웠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위촉을 받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신라의 비석임을 밝혔다 1924년 창령읍 교상리의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창녕 진흥왕 척경비는 561년 높이 162㎝, 너비 174㎝, 두께 30∼51㎝ 화강암에 해서체로 643자의 글자를 새겨졌고 창녕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평야 지대로 경상우도의 중심지였다
척경비(拓境碑)는 진흥왕이 순수관경(巡狩管境)이 아니라 국왕이 새로운 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순수비(巡狩碑)는 진흥왕이 백제의 한강 유역과 고구려의 동북 해안으로 확장된 영토를 직접 순회하며 세운 비를 말한다
도리이 류조(鳥居龍臧)는 일본 시코쿠(四國) 도쿠시마현 출신으로 학력은 없어 도교제국대학과 대립했다 도쿄대학 고쿠가쿠인대학 조치대학 등에서 교수롤 활동하며 일본을 비롯해 조선 만주 몽골 시베리아 타이완 등에서 인류학을 조사했다
도리이 류조는 인류학 조사에서 처음으로 사진기와 축음기를 사용했다 고고학 민속학 민족학 등 수많은 조사를 시행하여 종합 인류학자(総合 人類学者)로 불린다 조사자료는 도쿠시마 현립 도리이 기념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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