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선조특집 / 9 광해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선조특집 / 9 광해군)
광해군(光海君)은 선조와 공빈김씨의 서차남으로 임해군의 동생이며 영창대군 신성군 정원군의 이복형이다 선조는 정비 의인왕후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인빈김씨가 낳은 신성군을 세자로 염두에 두었다
영의정 이산해, 우의정 류성룡, 좌의정 정철 등은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합의했다 이산해는 인빈김씨에게 ‘정철이 신성군을 죽이려 한다’ 라고 말했다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책봉을 건의하자 선조는 화를 내며 정철을 파직하고 유배를 보냈다
동인들은 기축옥사로 극심한 피해를 입힌 정철을 온건한 처벌을 주장하는 남인과 강경한 처벌을 주장하는 북인으로 분당했다 세자책봉 문제는 금기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지 평양에서 아들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했다
광해군은 의병을 모집하여 분조(分朝)를 이끌면서 전란을 수습했다 신성군은 의주로 피난 가던 길에 15세에 사망했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정원군은 성격이 포악하고 행동이 방탕하여 탄핵을 받았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인목왕후를 계비로 맞이하여 영창대군을 낳았다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에서 폐위하고 적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을 고집했다 정권을 잡고 있던 북인 중에서 유영경은 영창대군을 지지했고 정인홍은 광해군을 지지했다
선조는 나이 어린 영창대군을 대신하여 장성한 광해군에게 양위한다는 교서를 내렸다 광해군은 선조가 사망하자 34세 나이로 즉위하여 중립외교를 펼치면서 전란을 수습했다 정적제거와 궁궐복원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광해군은 이이첨과 김개시를 총애하고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 서인들이 주도하는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어 제주로 이배되어 67세에 독살됐다 폐비유씨 폐세자 폐세자빈 등도 함께 유배되어 살해됐다
명나라 만력제는 장남 주상락과 3남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하는 문제로 15년 동안 대립했다 광해군은 선조가 죽고 왕으로 즉위할 때까지 명나라로부터 세자책봉 승인을 받지 못했다 명나라는 장남 주상락이 14대 태창제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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