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향 특집 / 5 소풀뜯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향 특집 / 5 소풀뜯기)
옛날에는 집집마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소가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해 질 무렵에 소풀뜯기를 하였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은 소를 풀이 많은 곳에 매어두고 지게에 소깔을 한 바지기를 베었다 소는 말을 잘 들었지만 염소는 말을 듣지 않았다
국민학교 2학년 여름에 옆집 형인 개구리를 잡는 것을 구경하다가 낫이 이마에 박혀 이마에 낫을 꽂은 채로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 때문에 낫을 잡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아남은 것만으로 행운이다 그때부터 머리가 미련해졌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버지는 작은방 아궁이에서 볏짚에 죽재와 콩을 넣어 장작불로 소죽을 끓여 먹였다 작은방 아랫목의 이불을 걷으면 검게 타서 변한 바닥이 보였다 가끔 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소를 키워 쟁기도 끌었고 수레도 끌었다 소가 재산 1호가 되었다 소를 팔아 아들 딸 대학도 보냈다 소 팔아 대학 간다는 말 때문에 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젠 개나 소나 대학에 가는 시대가 되었다
소는 고기 우유 가죽 부산물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하여 농가의 재산 척도가 되었다 경운기가 보급되자 소는 일소에서 식용으로 변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자 쇠고기 공급부족 현상이 초래했다
1976년 박정희 정권은 처음으로 쇠고기를 수입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은 한우사육을 장려하며 입식자금을 지원했다 정부정책으로 암송아지 한 마리가 16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폭등했다 농민들은 한우를 사육했다
1985년 전경환이 새마을운동협의회 중앙본부 회장으로 취임하여 한 해 동안 74,164마리의 미국소를 수입했다 결국 소 한 마리가 10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폭락하는 소값파동이 일어났다 전경환은 전두환의 막내동생으로 이권청탁의 귀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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