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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군정관청 특집 / 1 당나라의 웅진도독부)

역사야톡 2024. 5. 26. 19:5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군정관청 특집 / 1 당나라의 웅진도독부)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는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유민들을 통치하기 위해 고토에 설치한 군정기관이다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 금련(金漣) 덕안(德安) 등에 5개의 도독부를 세웠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를 웅진도독부 도독으로 임명했다

부여융(扶餘隆)은 의자왕의 장남으로 태자에 책봉됐으나 나당연합군에 쫓겨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도망가서 항복하고 장안으로 끌려갔다 당나라의 회유로 당고종의 신하가 되어 관직을 받고 활동했다

백제가 멸망하자 의자왕을 비롯해 장남 부여융, 차남 부여태, 3남 부여효, 4남 부여연 등 당나라로 끌려갔다 다만 왜국에 질자(質子)로 억류되어 있던 5남 부여풍은 당나라에 끌려가지 않았다

귀실복신 흑치상지 사타상여를 비롯해 승려 도침 등이 임존성을 중심으로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켜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을 격퇴했다 사비성과 웅진성을 되찾았으나 신라군의 공격으로 빼앗은 성을 다시 빼앗겼다

부여풍(扶餘豊)은 백제의 옛 대신들의 요청으로 왜국에서 20여 년 만에 귀국하여 백제부흥운동에 앞장섰다 귀실복신과 도침의 주도권 싸움으로 귀실복신이 도침을 살해하자 부여풍이 귀실복신을 살해했다

당나라는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기 위해 부여융을 당나라군 사령으로 임명했다 부여융은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서 백제 부흥운동을 토벌했다 부여풍은 포로로 잡혀서 당나라에 압송되어 유배됐다

당나라는 웅진도독부 도독으로 백제 유민들의 발발을 달래기 위해 유인궤에 이어 부여융을 임명했다 부여융은 나당전쟁이 일어나자 신라군에 의해 다시 당나라로 쫓겨났고 웅진도독부는 요동의 건안성으로 옮겨갔다

부여융은 나당전쟁 이후 당나라로 돌아가서 귀족으로 살다가 68세에 사망하여 뤄양의 북쪽에 있는 북망산에 묻혔다 부여융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으로 추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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