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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인좌의 난)

역사야톡 2024. 7. 19. 19:5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인좌의 난)

노론은 경종이 후가가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에 이어 경종의 건강을 이유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요구했다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이 처형되는 신축옥사가 발생했다

소론의 김일경과 목호룡이 연잉군 등 노론 일파가 경종을 죽이려는 역모를 고변했다 경종은 연잉군을 제외한 관련자가 전원을 탄핵되는 임인옥사가 발생했다 노론이 축출된 신축옥사와 임인옥사를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 한다

영조가 즉위하여 을사환국(乙巳換局)을 통해 소론을 축축하고 노론을 등용했다 정치보복으로 사회가 혼란하자 정미환국(丁未換局)을 통해 노론을 축출하고 소론을 등용하여 명목상의 탕평(蕩平)을 추진했다

영조는 자신의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임사화가 무교였다는 경신처분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인좌를 중심으로 소론과 남인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가 관련됐다고 주장하며 이인좌의 난을 일으켰다

이인좌가 대원수라 칭하고 밀풍군 탄(坦)을 왕으로 추대하여 영조를 축출하고 왕권을 바로 세운다며 반란을 시작했다 밀풍군은 소현세자의 증손자이자 제주로 유배되어 살아남은 경안군의 손자이다

이인좌는 경종의 죽음에 의혹이 있고 영조의 혈통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충주성을 점령했다 이인좌가 관군에 진압되자 정희량이 영남에서 최후까지 저항했다 이인좌와 장희량은 참수됐고 밀풍군은 영조로부터 자결을 명받아 자결했다

영조는대구부의 남문 밖에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우로 반역향으로 지목하고 과거응시를 금지하고 출사를 봉쇄했다 정조는 영남 민심을 위로하고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안동 도산서원에서 조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대과(大科) 시험을 치뤘다

선조 때 정여립의 난으로 호남이 영조 때 이인좌의 난으로 영남이 반역향(反逆鄕)으로 지목되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호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역향에서 제외됐지만 영남은 흥선대원군 집권 때까지 반역향으로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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