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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39 /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1)

역사야톡 2024. 9. 4. 19:56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39 /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1)

1988년 전대협의 6.10 남북학생회담과 노태우의 7.7 특별선언으로 남북의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1989년 1월 북한은 '남북정치 협상회의'를 제안했고 3월 20일 황석영 작가와 3월 25일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다. 4월 9일 노태우 정부는 '좌경용공세력을 색출한다'라며 치안본부 - 안기부 - 검찰 합동으로 '공안합동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재야와 학생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1989년 6월 30일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방북했다. 문규현 신부는 천주교 신자 보호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여 임수경과 함께께 판문점으로 귀국했다. 노태우는 노태우는 체제전복 세력의 선동을 이젠 두고 볼 수가 없다면서 재야와 학생들을 좌경세력 발본색원이라는 명분으로 집권 3년 만에 4,300여 명을 구속했다.

1989년 5월 3일 이철규는 광주직할시 북구 청풍동 제4수원지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고 실종됐다. 5월 10일 제4수원지 상류에서 이철규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철규는 1985년 11월 반외세독재 투쟁위원회 활동으로 구속되어 1987년 7월 가석방됐고 1989년 1월 조선대학교 교지인 민주조선 편집장으로 '미제 침략사 100년사'를 게재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수배를 받고 있었다.

광주지역 재야인사, 대학교수, 학생들을 중심으로 '애국학생 고 이철규 열사 고문살인 규명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철규가 도망가서 체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검찰은 단순 익사라고 발표했다. 1989년 11월 4일 사망한 지 178일 만에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망월동 묘지에 묻혔다. 2004년 5월 21일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는 이철규 변사사건에 안기부가 개입됐다고 밝혔다.

1990년 2월 여당인 민주정의당,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이 3당합당을 강행했다. 3당합당은 13대 총선의 여소야대(與小野大)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만행이다. 1990년 10월 노태우는 특별선언으로 '범죄와 전쟁'을 선포했다. 보안사 윤석양이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동환·김수환 등 923명의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폭로하자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한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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