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여성특집 / 3 친일파 '임영신')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여성특집 / 3 친일파 '임영신')
임영신(任永信)은 충남 금산 출신으로 전주의 기전여고보를 다니면서 쓰개치마 거부운동을 벌였고 일본 국가 부르기 거절운동을 하였다 3.1운동 당시 전주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임영신은 히로시마 전문여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이화학당의 교사로 출강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남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승만이 조강지처 박승선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영신에게 청혼했다 임영신은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는 그날까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생각입니다'며 이승만의 청혼을 거절했다
이승만은 임영신에게 청혼이 실패하자 이혼녀 프란체스카와 이중혼을 하였고 해방이 되어서 박승선과 파혼했다 임영신은 미국에서 한순교와 결혼하고 1940년 혼자 귀국했다 임영신은 변절하여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정신대 모집과 국방헌금 모금에 앞장섰다
<2천 4백만 반도민 모두 일치 결속하여 성전(聖戰) 완수로써 황국의 흥융을 기하며 성은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할 것을 맹세한다>며 중앙보육학교의 대표로 조선임전보국단에 참가하여 선서했다
<고도 국방국가 체제에 즉응하기 위하여, 황국 전통의 부도(婦道)에 즉해서 수신제가 봉공의 실을 거둔다>를 목적으로 20세 미만의 미혼자를 제외한 여성을 대상으로 '대일본 부인회 조선본부'를 조직했다
임영신이 해방이 되어 이승만을 찾아가자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승만의 두 번째 부인인 프란체스카로부터 돈암장 출입이 금지됐다 임영신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의원이 되었다
임영신은 정부수립 직후 여성 최초로 상공부 장관에 임명됐다 중앙여자대학을 중앙대학으로 승격하고 총장에 취임했다 배임 수뢰 사기횡령 등 독직사건(瀆職事件)으로 상공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세 차례나 부통령 후보로 출마를 하였으나 모두 낙선했다
임영신은 4.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방해했고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쿠데타 지지선언을 하였다 박정희의 공화당에 참여하여 한일협정 찬성운동과 이승만 환국운동을 벌였다
임영신은 박정희의 3선 개헌에 적극 지지했고 통일주체국민의회 대의원을 역임했다 임영신은 친일파와 독재자의 중앙에서 살다간 부끄러운 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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