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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5 / 이기붕과 박마리아)

역사야톡 2024. 12. 26. 19:4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15 / 이기붕과 박마리아)

이기붕(李起鵬)은 효령대군의 17대손으로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서 보성중고학교를 다녔다 연희전문학교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데이버 대학교를 졸업을 했다 미국에서 이승만을 만나 대한인동지회에 가입하여 측근이 되었다

이기붕은 귀국하여 이화여전 강사인 박마리아와 혼인했다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은신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이승만이 귀국하자 비서직으로 활동했다 아내 박마리아는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의 시중을 들었다

이기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비서실장과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1951년 12월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고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기붕은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하며 민족의 해 이승만에 이어 민족의 달 이기붕으로 불리며 권력의 2인자가 되었다 아들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켜 권력을 강화했다

이기붕은 1956년 5월 자유당 후보로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 후보 장면에게 낙선했다 1960년 3월 자유당 후보로 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부통령에 당선됐다 4.19 혁명이 일어나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강석은 이기붕의 친아들이자 이승만의 양아들로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이강욱을 차례로 쏘아 죽이고 자살했다 이기붕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고 살던 집은 국가에 환수되어 4·19 혁명기념 도서관이 건립됐다

박마리아(朴瑪利亞)는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에 유학하여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이화여전 강사로 재직하며 이기붕과 혼인했다

박마리아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며 징병제와 위안부를 지지했다 해방이 되자 프란체스카 도너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남편 이기붕을 대통령비서실장과 서울특별시장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박마리아는 아들 이강석의 이승만 양자 입적과 제4대 및 제5대 부통령 후보 지명에 깊게 관여했다 박마리아가 회장으로 있던 대한부인회는 전국대회를 열고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이강석(李康石)은 이기붕과 박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 편입했으나 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취소됐다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하여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세 생일에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됐다

1957년 8월 30일 이강석을 사칭한 청년이 '아버지의 명을 받고 경주지방 수해 상황을 살피러 왔다'면서 경주와 영천에서 경찰서장 시장 군수 등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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