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대한민국 특집 7 / 제1공화국과 3.15 부정선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대한민국 특집 7 / 제1공화국과 3.15 부정선거)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제2대 총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되어 국회 간선제로는 당선이 불투명하게 되자 한국전쟁 중에 국민 직선제로 개헌하여 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제헌헌법에 1차 중임만 허용되어 3대 대선에 출마가 불가능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사사오입 개헌을 자행하고 3대 대선에 출마했다 대통령은 자유당 이승만이 당선됐고 부통령은 민주당 장면이 당선됐다 이승만이 사망할 시 대통령직이 민주당 장면 부통령에게 승계하게 되었다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정부통령 후보에 자유당 이승만과 이기붕, 민주당 조병옥과 장면이 출마했다 이승만이 86세의 고령이라 대통령과 더불어 부통령까지 당선이 절실하게 요청됐다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신병 치료차 미국에 가서 사망하자 유일후보가 된 이승만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이기붕은 이승만이 재임 중에 사망할 경우 부통령직이 민주당에 승계될 것을 우려하여 부통령 당선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최인규 내부장관은 "어떠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이승만 박사와 이기붕 선생이 꼭 당선되도록 하라" 라고 군수 및 경찰서장들에게 지시했다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부정선거와 개표조작을 감행했다
자유당은 4할 사전투표, 3인 1조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뇌물 살포 등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올빼미표, 피아노표, 샌드위치표 등 개표부정을 자행했다 일부 지역에서 유권자의 115%가 투표했고 이기붕의 득표율 99%가 되기도 하였다
1960년 3월 18일 국회에서 이승만과 이기붕을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로 발표했다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제4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100% 득표율로 당선됐고 제5대 부통령은 이기붕이 79.19% 득표율로 당선됐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4월 19일 서울에서 경찰의 발포로 104명이 사망했다 4월 25일 교수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4.19 혁명이 일어나자 4월 26일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을 밝혔다 4월 27일 이승만은 사퇴하고 4월 28일 이기붕이 살해됐다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됐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대한민국특집 #제1공화국 #3.15부정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