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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사찰 특집 ㉘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

역사야톡 2025. 6. 27. 19:54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사찰 특집 ㉘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

서일환 언론학박사·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

강진군(康津郡)은 전라남도 서남부 해안에 있는 군으로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이다. 강진만을 중심으로 좌우에 해남반도 동부와 장흥반도 서부가 있고 한가운데 가우도가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대문자 A자 모양으로 생겼다. 조선 태종 때 도강군과 탐진현을 강진현(康津縣)으로 통합했다. 고종 때 강진군으로 개편됐고 현재 1읍, 10면에 3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백련사(白蓮寺)는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있는 사찰이며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大興寺)의 말사(末寺)이다. 남북국시대 신라 문성왕 때 무염(無染)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백련사는 원묘국사 요세가 천태종을 정통으로 삼고 백련사에서 백련결사(百蓮結社)운동을 전개했다. 백련사는 고려시대에 8명의 국사를 배출했으나 여말선초 왜구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다.

백련사, 요세의 백련결사 도량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삼아 고려를 창건했고 불교는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호국불교로 발전하며 왕권강화와 국가수호에 기여했다. 불교가 문벌귀족과 결탁하여 발전했으나 세속권력에 개입했다. 불교의 세속화에 반성하며 의천은 교종(敎宗) 중심으로, 지눌은 선종(禪宗) 중심으로 통합을 전개했다. 불교의 정화를 위해 지눌(知訥)은 정혜결사, 요세(了世)는 백련결사를 전개했다.

조선 세종 때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전국을 유람하며 백련사에 8년간 머물면서 폐사된 사찰을 중창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를 올렸다. 효령대군은 태종의 아들로 형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고 동생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불교에 귀의했다. 백련사는 조선 후기에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宗師)를 배출했다.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적으로 사적 제107호로 지정됐다. 정약용(丁若鏞)과 혜장선사(惠藏禪師)가 학문적 교류를 나뉘던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명승으로 지정됐고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됐다. 혜장선사는 전남 해남 출신의 유불선을 겸비한 승려이며 30세에 대흥사 주지를 역임했고 40세에 아암집(兒庵集)을 남기고 요절했다.

강진, 고려청자 요지와 전라병영성

강진 고려청자 요지(康津 高麗靑瓷 窯址)는 강진군 대구면 사달이 일대의 고려청자 가마터로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진은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가 산출되고, 산이 많아 목재가 많고, 바다와 접해 수송이 편리하여 도요지로 천혜의 입지를 가졌다. 고려청자는 비취색 빛을 띠는 고려 시대의 청자로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으로 쇠퇴했다. 매년 고려청자요지 일원에서 강진 청자축제를 개최한다.

강진 전라병영성(康津 全羅兵營城)은 강진군 병영면에 전라도와 제주도의 육군을 지휘하는 병마절도사가 주둔했던 성으로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됐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소실됐고 갑오경장으로 폐영됐고 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1656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인 하멜이 유배되어 7년 동안 노역하다가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발표하여 조선을 서양에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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