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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 비극이 끝나지 않은 남도의 땅, 여수
역사야톡
2021. 6. 24. 19:56
[역사 속 전라도] 비극이 끝나지 않은 남도의 땅, 여수
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요양병원 본부장
여수시는 소백산맥 끝자락인 전남 동남부 여수반도와 돌산도, 경도, 묘도, 화태도, 백야도 등 365개 부속 섬으로 이루어진 항구도시로 29만여 명이 살고 있다. 북서쪽으로 순천시와 접해 있으며, 남서쪽에는 고흥군이, 북쪽에는 광양시가, 동쪽에는 남해군이, 남쪽에는 남해가 펼쳐졌다. 2012년 여수 엑스포가 열렸으며 우리나라 철도역 중 최남단에 위치한 여수엑스포역이 있다.
여수는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후백제에 속했다. 남북국 시대에는 여수를 해읍현(海邑縣), 돌산을 여산현(廬山縣)으로 불렀고 고려 태조 때 해읍현을 여수현(麗水縣), 여산현을 돌산현(突山縣)으로 개칭했다. 조선 태조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수현과 돌산현은 폐지하고 순천도호부로 편제됐다. 성종 때 여수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창설됐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 설치
선조 때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여수에서 거북선을 건조하여 왜적의 침입을 대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수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고 이순신이 삼군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경상, 전라, 충청 3도 수군을 이끌어 23전 23승의 신화를 창조했다. 임진왜란이 종료되자 삼군수군통제영은 거제로 옮겨졌다. 여수도호부는 세 번 복현됐고 세 번 폐현됐다. 고종 때 여수군과 돌산군이 신설됐다.
19세기 말에 러시아는 부동항을 개척하기 위해 한반도를 주목했다.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다. 청나라의 중재로 22개월 만에 영국군이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해방이 되자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됐고 여수군에서 여천군이 분리됐고 여수시에서 여천시가 분리됐다. 1998년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3려가 통합되어 새로운 여수시가 되었다.
여순사건의 비극 아직도 계속돼
1945년 여수에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미군정청에 협조하자 주민들이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미군정청과 대립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남로당 소속의 김지회와 지창수를 중심으로 하는 좌익 계열 병사들이 제주 4.3항쟁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하였다. 봉기군에 좌익 성향의 주민들이 합세하여 여수에 이어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을 점령했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했다. 반란군과 진압군 양측에서 최소 2,000명에서 최대 5,000명까지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좌익 세력을 대대적으로 색출하여 탄압했다. 남로당의 군사총책 박정희는 강제 예편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여수 지역의 국민보도 연맹원들을 집단학살했다.
여수의 맛과 멋을 대표하는 10미(味), 10경(景)
여수 진남관(麗水 鎭南館)은 전라좌수영의 진해루가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소실되자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세웠다. 역대 왕들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참배를 행했고 사신들이 머물렀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로 사용됐고 1963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됐고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됐다. 총 75칸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목조 건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여수의 멋과 맛을 대표하는 자연환경 10경과 향토음식 10미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여수 10경에는 오동도, 거문도·백도, 향일암, 금오도 비렁길, 세계박람회장, 진남관, 밤바다·야경, 영취산 진달래, 해상 케이블카, 이순신대교 등이다. 여수 10미에는 돌산갓김치, 게장백반, 서대회, 한정식, 갯장어회·샤브샤브, 굴구이, 장어구이·탕, 갈치조림, 새조개 샤브샤브, 전어회·구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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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요양병원 본부장
여수시는 소백산맥 끝자락인 전남 동남부 여수반도와 돌산도, 경도, 묘도, 화태도, 백야도 등 365개 부속 섬으로 이루어진 항구도시로 29만여 명이 살고 있다. 북서쪽으로 순천시와 접해 있으며, 남서쪽에는 고흥군이, 북쪽에는 광양시가, 동쪽에는 남해군이, 남쪽에는 남해가 펼쳐졌다. 2012년 여수 엑스포가 열렸으며 우리나라 철도역 중 최남단에 위치한 여수엑스포역이 있다.
여수는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후백제에 속했다. 남북국 시대에는 여수를 해읍현(海邑縣), 돌산을 여산현(廬山縣)으로 불렀고 고려 태조 때 해읍현을 여수현(麗水縣), 여산현을 돌산현(突山縣)으로 개칭했다. 조선 태조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수현과 돌산현은 폐지하고 순천도호부로 편제됐다. 성종 때 여수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창설됐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 설치
선조 때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어 여수에서 거북선을 건조하여 왜적의 침입을 대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수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고 이순신이 삼군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경상, 전라, 충청 3도 수군을 이끌어 23전 23승의 신화를 창조했다. 임진왜란이 종료되자 삼군수군통제영은 거제로 옮겨졌다. 여수도호부는 세 번 복현됐고 세 번 폐현됐다. 고종 때 여수군과 돌산군이 신설됐다.
19세기 말에 러시아는 부동항을 개척하기 위해 한반도를 주목했다.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동양함대를 파견하여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다. 청나라의 중재로 22개월 만에 영국군이 거문도에서 철수했다. 해방이 되자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됐고 여수군에서 여천군이 분리됐고 여수시에서 여천시가 분리됐다. 1998년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3려가 통합되어 새로운 여수시가 되었다.
여순사건의 비극 아직도 계속돼
1945년 여수에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미군정청에 협조하자 주민들이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미군정청과 대립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남로당 소속의 김지회와 지창수를 중심으로 하는 좌익 계열 병사들이 제주 4.3항쟁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하였다. 봉기군에 좌익 성향의 주민들이 합세하여 여수에 이어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을 점령했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했다. 반란군과 진압군 양측에서 최소 2,000명에서 최대 5,000명까지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좌익 세력을 대대적으로 색출하여 탄압했다. 남로당의 군사총책 박정희는 강제 예편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여수 지역의 국민보도 연맹원들을 집단학살했다.
여수의 맛과 멋을 대표하는 10미(味), 10경(景)
여수 진남관(麗水 鎭南館)은 전라좌수영의 진해루가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소실되자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세웠다. 역대 왕들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참배를 행했고 사신들이 머물렀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로 사용됐고 1963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됐고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됐다. 총 75칸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목조 건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여수의 멋과 맛을 대표하는 자연환경 10경과 향토음식 10미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여수 10경에는 오동도, 거문도·백도, 향일암, 금오도 비렁길, 세계박람회장, 진남관, 밤바다·야경, 영취산 진달래, 해상 케이블카, 이순신대교 등이다. 여수 10미에는 돌산갓김치, 게장백반, 서대회, 한정식, 갯장어회·샤브샤브, 굴구이, 장어구이·탕, 갈치조림, 새조개 샤브샤브, 전어회·구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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