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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함평천지’
역사야톡
2021. 11. 12. 19:48
[역사 속 전라도]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함평천지’
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 요양병원 본부장
함평군(咸平郡)은 한반도 서남부, 전라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으로 북쪽에 영광과 장성, 동쪽에는 광주와 나주, 남쪽에는 무안과 접하며 서쪽에는 함평만을 끼고 있다. 함평은 예로부터 땅이 기름져서 쌀맛이 좋아 ‘함평 쌀밥만 먹은 사람은 상여도 더 무겁다’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함평은 마한과 백제의 영역에 속했으며 조선 태종 때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이 함평현으로 통합됐고 대한제국 때 함평군이 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23부제가 반포되어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고, 1896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13도제로 개편되자 전라남도 함평군으로 개편됐다. 현재 1읍, 8면으로 구성됐고 인구는 3만 2천여 명이다.
전국 최초 '함평천지한우 산업특구' 지정
함평은 예로부터 함평만을 사이에 두고 함평평야, 월야평야, 학교평야 등 넓은 들녘에 전국 평균보다 최고 600배 이상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비옥한 토질로 인해 함평천지로 알려졌다. 특히 나비와 곤충이 살아있는 청정 함평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자라는 함평천지 한우는 함평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지식경제부에서 전국 최초 한우 산업 특구인 '함평천지 한우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함평 고막천 석교(咸平 古幕川 石橋)’는 고려 원종 때 축조된 교량으로 보물 제1372호로 지정됐다. 목조가구식 널다리 형식의 석조교량으로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다리이며 ‘떡다리’라고 불린다.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됐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평균 수령 350년이 넘은 100여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용천사(龍泉寺)는 600년 행은존자가 함평군 해보면 모악산 자락에 창건한 천년고찰로 백양사의 말사이다. 용이 승천한 샘터에 절을 지어 용천사라고 부른다. 용천사에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을 뜻하는 꽃무릇이 만개하면 축제가 열린다. 꽃무릇은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가을에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지면 잎이 나오며 석산(石蒜)이라고 한다.
함평 나비대축제, 전국 최고의 축제로 평가
함평 나비대축제는 산업자원과 관광자원이 부족한 함평군에서 나비와 자연을 소재로 함평 엑스포공원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행사이다. 전국 1,000여 개의 축제 중에서 가장 성공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멸종위기의 황금박쥐를 비롯해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 24종 20만 마리 나비와 2,400여 종 24,000여 포기의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엑스포공원은 황금박쥐 생태관, 나비곤충 표본전시관, 나비곤충 생태관, 생태습지 등을 갖춘 공원이다.
전라도에서는 삼성삼평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삼성삼평(三城三平)은 보성, 곡성, 장성 그리고 함평, 창평, 남평 등을 말하며 드세고 거칠다는 뜻이다. 이 지역들은 임진왜란과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치열하게 의병 활동을 했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에 대표적인 항일운동 지역이었다.
호남가, 함평천지 평화를 노래해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을 보랴하고 / 제주 어선(濟州 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제 / 흥양(興陽)의 돋는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 고산(高山)에 아침안개 영암(靈巖)을 둘러있네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가 종2품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무렵 지었다는 중모리장단의 호남가(湖南歌)의 일부로 국창(國唱) 임방울(林芳蔚)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이서구는 우의정을 역임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알려졌다. 임방울은 판소리 명창으로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불러 세상에 알려졌고 서편제 소리의 최후 보루로 전해진다. 함평의 咸은 가득함을 뜻하며 平은 평탄함을 뜻하여 평화롭게 살아가는 좋은 세상에 최고 태평성세를 내포하고 있다.
김철(金澈)은 함평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1917년 일제가 식민통치에 협력을 강요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신한청년당 창당 발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47세에 요절했다.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2003년 고향에 김철기념관이 완공됐다.
함평 고구마 사건은 유신정권의 기만적 수매정책과 농협의 부정행위에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한 사건이다. 장홍빈 주임신부를 비롯해 서경원, 김현장, 윤한봉, 황광우 등 전남에서 44명과 문익환 목사 등 다른 지역 29인이 단식 투쟁을 하였다. 1930년 암태도 소작쟁의에 이어 처음으로 농민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여 해방 이후 최초로 승리했다. 함평 고구마 사건은 YH여공 사건과 함께 유신체제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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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 요양병원 본부장
함평군(咸平郡)은 한반도 서남부, 전라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으로 북쪽에 영광과 장성, 동쪽에는 광주와 나주, 남쪽에는 무안과 접하며 서쪽에는 함평만을 끼고 있다. 함평은 예로부터 땅이 기름져서 쌀맛이 좋아 ‘함평 쌀밥만 먹은 사람은 상여도 더 무겁다’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함평은 마한과 백제의 영역에 속했으며 조선 태종 때 함풍현(咸豊縣)과 모평현(牟平縣)이 함평현으로 통합됐고 대한제국 때 함평군이 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23부제가 반포되어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고, 1896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13도제로 개편되자 전라남도 함평군으로 개편됐다. 현재 1읍, 8면으로 구성됐고 인구는 3만 2천여 명이다.
전국 최초 '함평천지한우 산업특구' 지정
함평은 예로부터 함평만을 사이에 두고 함평평야, 월야평야, 학교평야 등 넓은 들녘에 전국 평균보다 최고 600배 이상 게르마늄 함량이 높은 비옥한 토질로 인해 함평천지로 알려졌다. 특히 나비와 곤충이 살아있는 청정 함평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자라는 함평천지 한우는 함평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지식경제부에서 전국 최초 한우 산업 특구인 '함평천지 한우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함평 고막천 석교(咸平 古幕川 石橋)’는 고려 원종 때 축조된 교량으로 보물 제1372호로 지정됐다. 목조가구식 널다리 형식의 석조교량으로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다리이며 ‘떡다리’라고 불린다.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됐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평균 수령 350년이 넘은 100여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용천사(龍泉寺)는 600년 행은존자가 함평군 해보면 모악산 자락에 창건한 천년고찰로 백양사의 말사이다. 용이 승천한 샘터에 절을 지어 용천사라고 부른다. 용천사에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을 뜻하는 꽃무릇이 만개하면 축제가 열린다. 꽃무릇은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가을에 꽃이 피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지면 잎이 나오며 석산(石蒜)이라고 한다.
함평 나비대축제, 전국 최고의 축제로 평가
함평 나비대축제는 산업자원과 관광자원이 부족한 함평군에서 나비와 자연을 소재로 함평 엑스포공원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행사이다. 전국 1,000여 개의 축제 중에서 가장 성공한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멸종위기의 황금박쥐를 비롯해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 24종 20만 마리 나비와 2,400여 종 24,000여 포기의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엑스포공원은 황금박쥐 생태관, 나비곤충 표본전시관, 나비곤충 생태관, 생태습지 등을 갖춘 공원이다.
전라도에서는 삼성삼평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삼성삼평(三城三平)은 보성, 곡성, 장성 그리고 함평, 창평, 남평 등을 말하며 드세고 거칠다는 뜻이다. 이 지역들은 임진왜란과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치열하게 의병 활동을 했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에 대표적인 항일운동 지역이었다.
호남가, 함평천지 평화를 노래해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을 보랴하고 / 제주 어선(濟州 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제 / 흥양(興陽)의 돋는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 고산(高山)에 아침안개 영암(靈巖)을 둘러있네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가 종2품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무렵 지었다는 중모리장단의 호남가(湖南歌)의 일부로 국창(國唱) 임방울(林芳蔚)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이서구는 우의정을 역임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알려졌다. 임방울은 판소리 명창으로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불러 세상에 알려졌고 서편제 소리의 최후 보루로 전해진다. 함평의 咸은 가득함을 뜻하며 平은 평탄함을 뜻하여 평화롭게 살아가는 좋은 세상에 최고 태평성세를 내포하고 있다.
김철(金澈)은 함평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1917년 일제가 식민통치에 협력을 강요하자 중국으로 망명했다. 신한청년당 창당 발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47세에 요절했다.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2003년 고향에 김철기념관이 완공됐다.
함평 고구마 사건은 유신정권의 기만적 수매정책과 농협의 부정행위에 농민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한 사건이다. 장홍빈 주임신부를 비롯해 서경원, 김현장, 윤한봉, 황광우 등 전남에서 44명과 문익환 목사 등 다른 지역 29인이 단식 투쟁을 하였다. 1930년 암태도 소작쟁의에 이어 처음으로 농민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여 해방 이후 최초로 승리했다. 함평 고구마 사건은 YH여공 사건과 함께 유신체제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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