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역사 속 전라도] 가사문학특집 ② 면앙정과 송순

역사야톡 2024. 3. 22. 19:59

[역사 속 전라도] 가사문학특집 ② 면앙정과 송순

서일환 언론학박사·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

송순(宋純)은 전라도 담양도호부 출신으로 송흠(宋欽)과 박상(朴祥)의 문하에 수학했다. 21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6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정6품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나 중종의 부마인 김안로(金安老)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俛仰亭)을 짓고 면앙정가를 남겼다. 김안로가 사사되자 정계로 복귀하여 정품 대사간에 이어 종2품 경상도관찰사에 올랐으나 중종의 처남인 윤원형(尹元衡)에 의하여 종2품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됐다.

송순은 명종이 즉위하자 복귀하여 중종실록을 찬수했고 종2품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이기(李芑)에 의하여 충청도 서천으로 유배됐다. 유배에서 풀려나서 면앙정을 증축하자 기대승(奇大升)이 면앙정기(俛仰亭記)를 쓰고, 김인후(金麟厚), 임억령(林億齡), 박순(朴淳), 고경명(高敬命) 등이 시를 지었다. 전주부윤과 나주목사를 거쳐 70세의 나이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선조가 즉위하자 명종실록을 찬수했고 정2품 우참찬을 끝으로 50년 만에 은퇴하고 면앙정에서 시가를 즐기다가 90세에 졸하였다.

면앙,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본다

"꽃이 진다하여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이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엇하리요" 송순이 을사사화를 자행한 윤원형 일파를 비난하고 피해를 입은 윤임 일파를 애도하는 '상춘가(傷春歌)'를 남겼다. "십 년을 꾸려내어 초려삼간(草家三間)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나눠드니/ 강산은 들올 곳 없어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이 면앙정을 마련하고 자연 속에서 즐기는 즐거움과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십 년을 경영하여(經營兮十年)'로 남겼다.

면앙정(俛仰亭)은 송순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기 위해서 담양 제봉산 자락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정자이다. 면앙은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본다.'라는 뜻이다. 면앙정은 이황(李滉), 소세양(蘇世讓)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김인후, 박순, 기대승, 고경명, 정철, 임제 등 후학을 길러내던 곳이다. 정유재란 당시 파괴되어 후손들이 중수했다. 면앙정에는 '면앙정가 3언', '면앙정기', '면앙정 30영' 등 수많은 편액이 걸려있다.

송순, 면앙정가를 남긴 강호가도 선구자

1579년 송순의 과거급제 60년을 기념하여 나라에서 잔치를 열어주는 회방연(回榜宴)이 열렸다. 선조는 어사화(御賜花) 꽃과 선온(宣醞), 술을 하사했고 고경명, 정철, 임제 등이 가마꾼이 되어 대나무 가마(竹輿)를 메고 내려왔다. 1798년 광주에서 실시된 특별 과거시험에 정조가 2백 년 전 회방연 당시 제자들이 수레를 멘 송순의 일화인 '하여 면앙정(荷輿 俛仰亭)'을 어제(御製)로 내렸다. 송순은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시가와 산문을 엮은 면앙집(俛仰集)과 기촌집(企村集)을 남겼다.

"너럭바위 위에/ 소나무 대나무 헤치고 정저에 앉혔으니/ 구름 탄 푸른 학이 천 리를 가려고/ 두 날개를 벌리고 있는 듯하네" 면앙정가(俛仰亭歌)는 송순이 면앙정에서 은둔하며 주변 산수의 아름다움을 읆은 79구의 가사로 원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기촌집(企村集)에 한역(漢譯) 되어 전한다. 가사(歌辭)는 고려말에 시작되어 조선에 사대부층에 의해 자리 잡은 문학 양식으로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백광홍의 관서별곡, 정철의 관동별곡 등이 대표적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역사속전라도 #가사문화특집 #송순 #면앙정 #면앙정가 #광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