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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신라특집 / 6 화랑도)

역사야톡 2024. 3. 24. 19:51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신라특집 / 6 화랑도)

화랑도(花郞徒)는 왕과 귀족의 자제들이 학문과 무술을 익히고 결속력과 단합력을 다지기 위한 무사조직이다 삼국사기에 잘생긴 남자를 곱게 단장시켜 화랑으로 삼았다고 기록됐다 화랑도에 소속된 청년들을 낭도(郎徒)라고 하였다

화랑도는 꽃같이 아름다운 사내라는 뜻이며 낭가 풍류도 국선도 풍월도 등으로 불렸고 화랑도의 지도자를 국선(國仙)이라 불렸다 화랑도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익히며 무예를 연마하고 향가를 짓는 등 문학 활동도 하였다

화랑도는 도의를 닦는다는 상마도의(相磨道義) 노래와 음악을 즐긴다는 상열가악(相悅歌樂) 산수 좋은 곳을 찾아 노닌다는 유오산수(遊娛山水)를 수양방법으로 삼았다 화랑도는 겸손하고 검소하고 방자하지 않는다는 삼이(三異)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화랑도는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제정한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실천덕목으로 삼았다

원광법사는 신라의 승려로 "남을 없애며 자신이 산다는 것은 승려의 본분이 아니지만 대왕의 나라 안에서 먹고 사는 처지로서 그 명을 어길 수 없다"라며 진평왕의 명으로 수나라에 지원을 요청한 외교 문서인 걸사표(乞師表)를 남겼다

김유신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말이 버릇대로 천관녀의 집 앞에 서 멈춘 말의 목을 베어 죽이자 천관녀는 승려가 되었다 김원술은 김유신의 차남으로 석문전투에서 패배하고 살아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내침을 당하자 은둔했다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에 4번 싸워서 4번 패배했다 김반굴은 김흠순의 아들로 포위되어 전사했다 관창은 김품일의 아들로 두 번 사로잡힌 뒤 전사했다 아들은 죽었어도 아버지는 영웅이 되었다

'화랑(花郞)의 후예(後裔)'는 1935년 김동리가 중앙일보에 발표한 소설이다 일제강점기의 명문가의 후손이며 화랑의 후예라고 자랑하는 몰락한 양반이 허세와 오만을 풍자한 작품이다 김동리는 일제의 침략전쟁 찬양을 거부하고 절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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