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영암특집 / 7 영암으로 유배(流配)된 사람들 4)
장지항(張志恒)은 1721년 정2품 형조판서 장붕익(張鵬翼)의 손자이며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 장태소(張泰紹)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정3품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종2품 금위대장이 되었다.
정2품 형조판서에 재임 중에 당쟁으로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어 해배되어 종2품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유배 당시 환관(宦官)들과 음모하여 역모를 꾀하였다는 무고로 역모죄로 장살(杖殺)됐다.
김이도(金履度)는 1750년에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이자 정1품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증손이자 정3품 승지 김제겸(金濟謙)의 손자이고, 정3품 남원부사 김탄행(金坦行)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이도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고 벽파(僻派)가 득세하자 시파(時派)로 몰려 영암에 유배되어 장암정에 현판을 남겼다. 해배되어 정3품 대사성, 정2품 공조판서, 종1품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황경한(黃景漢)은 정약종의 제자 황사영과 정약현의 딸 정명련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 황사영(黃嗣永)은 신유박해의 전말을 밝힌 백서를 작성하여 능지처참형을 당했고 어머니는 제주도에 관로로 끌려가서 평생을 보냈다.
황경한은 2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 가는 어머니가 영암군 추자도 갯바위에 내려놓고 떠나자 어부가 키웠다. 황경한은 추자도 물생이끝 바위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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