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4 /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어 2)
조퇴는 실장이 먼저 승인하고 담임에게 사후 보고를 하여 결석을 없앴다. 무결석반이라는 특혜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특권을 받았다. 교련복을 입고 지산재나 4수원지로 행군을 갈 때도 물통에 소주를 담아가도 교련 선생마저 모른 척해줬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갈 때는 나이트클럽 조명을 여관방 천장에 설치하고 담요로 문을 막고 불빛이 나가지 않도록 하고 고고 춤을 추며 놀기도 하였다.
1학년 때 교복이 자율화 되었고 2학년 때 머리와 신발이 자율화 되었다. 3학년 때 교복이 자율화 되었지만, 교련복은 없어지지 않았다. 대대장이 되어 월요일 아침 전교생 조회 시간에 긴 칼을 차고 분열과 사열을 하였다. 실장과 대대장 덕분에 10시간 실습은 언제나 A를 맞았다. 국·영·수보다 중요한 실습에서 A를 맞지 못하면 장학생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제헌절날 공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1학년 때는 한 반에 60여 명이지만 3학년 때는 50여 명으로 줄어든다. 적성을 핑계로 자퇴를 하거나 가장 형편으로 인해 1년을 쉬었다 다니기 때문이다. 아홉 살이나 열 살에 입학했거나 국민학교를 입학했거나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해를 쉬었다가 입학한 친구도 많고 고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호적으로 만 5세에 입학하여 5살 차이가 나는 친구도 있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나의삶나의인생특집 #조국근대화의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