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60 / 젊어서 산자여 따르라, 늙어서 산자를 사거라)
나의 고향은 영암군(靈巖郡) 서호면(西湖面) 산골정(産骨亭)이다. 산골정(産骨亭)은 깊은 산골짜기 동네가 아니라 자연동(自然銅) 산골(山骨)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자연동은 자연 상태에서는 황철석의 형태로 존재하는 황화철(黃化鐵)의 일종이다.
산에서 나는 뼈라는 의미로 산골이라 부르며 뼈를 잘 붙인다는 뜻에서 '접골단'으로 불린다. '산골은 민간에서 뼈를 붙이는 약으로 사용하는 자연동이다'라고 조선 최고의 어의(御醫) 허준(許浚)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에 기록됐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설과 음력 팔월 보름날 추석을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라 한다. 차례(茶禮)는 정월 초하루 아침과 팔월 대보름 아침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보통 설날에는 산자를 만들어 먹으며 세배를 드리며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어 먹으며 성묘를 한다.
전라도 바닷가 일부 지역에서는 음력 섣달그믐날과 음력 팔월 열나흗날 초저녁에 차례상을 차린다. 농부는 태양신을 모시기 때문에 차례를 아침에 지내고, 어부는 용왕신을 모시기 때문에 차례를 저녁에 지낸다.
일제강점기에 곤이종면(昆二終面)은 서호면(西湖面)으로, 산골정은 '신풍부락'으로 장복골을 '영풍부락'으로 개칭하고 '쌍풍리'라고 하였다. 신풍(神風)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말하며 영풍(靈風)은 고려 때 일본정벌을 나섰던 려몽연합군을 침몰시킨 바람을 말한다.
부락(部落)은 일본에서 천민이나 전쟁포로 또는 전염병 환자 등이 모여 사는 곳이다. 오랫동안 의미도 모른 채 부락이라고 불렀다. 신풍부락과 영풍부락은 산골정마을과 장복골마을로 불러야 한다.
나의 고향 산골정에는 어머니 문산댁이 전라도 전통 방식으로 만든 산골정 산자(産骨亭 散子)가 유명하다. 문산댁은 구림마을에서 산골정으로 시집와서부터 초가집에서부터 산자를 만들었다.
산골정 산자는 전통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월출산의 맑은 물과 영산강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찹쌀 85%와 쌀 15%로 썩어 수작업으로 만든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시루에 쪄서 얇게 밀어서 말린다. 다시 기름에 튀기고 다시 물엿을 붓으로 바른 다음 매화 모양의 튀밥을 묻힌 것이다.
곡창인 전라남도 영암은 예로부터 눈처럼 희고 소담하게 만든 백산자가 명물로 알려졌다. '쌀알을 튀기면 마치 꽃처럼 부풀어 벌어지므로 이렇게 만든 고물을 묻힌 유전병류(油煎餠類)를 산자라 한다.'라고 조선 후기의 실학을 집대성하여 성호학파를 형성한 이익(李瀷)이 쓴 백과사전인 성호사설(星湖僿說)에 기록됐다.
산자는 한과의 일종으로 유과(油菓)라고 한다. 한과(韓菓)란 산자, 강정, 다식, 과편, 엿, 약과 등 우리나라의 옛 과자를 총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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