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78 / 편식(偏食)은 보약보다 좋다 1)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담배농사를 하였다. 여름방학이 되면 담배밭에서 담뱃잎 따서 크기에 맞게 나뉘어 묶어 하우스에 열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등학교 때 소풍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들과 입담배를 피웠다.
대학생이 되어 최루탄의 고통을 잊기 위해 담배를 정식으로 시작하여 금연과 흡연을 반복했다. 교도소에서 국화잎을 응달에 말려 성경책에 말아서 봉초처럼 피웠다. 백수 때는 줄담배를 피웠고, 신혼 때는 침대 위에서 피웠다.
2009년 위낭소리가 개봉되면 광주에서 '감독과의 대화'의 자리가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중학교 1년 후배인 이충렬 감독과 술자리를 하며 담배 이야기가 나왔다. 이감독이 형님처럼 담배 피우시면 오래 살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날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끊었다. 딱 한 번 베트남 여행가서 할아버지가 피고 있던 물담배를 빨았던 기억도 10년은 넘은 것 같다. KT&G의 전신인 담배인삼공사의 담배로 버린 건강 인삼으로 되살리자는 구호가 생각난다. 요즘은 홍삼을 즐긴다.
산골정 사립문 앞에 주막이 있었다. 문산댁이 세 살 먹은 막둥이를 주막집에 맡겨두고 논밭으로 일하러 가셨다고 한다. 주막집 할머니는 손님은 오는데 아이가 울면 막걸리를 한입 먹였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세 살 때 배운 술은 앞으로 20년은 더 먹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소주 중에서 두꺼비와 단풍을 구별하지 못한다. 병맥주인지 생맥주인지 맛으로 구별하지 못한다. 17년 양주인지 30년 양주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다만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술맛을 다르게 할 뿐이다. 술도 편식하지 않고 사람도 편식하지 않는다.
매일 먹는 보리밥이 싫었다. 그렇다고 죽도 싫었다. 문산댁은 보리쌀을 삶아서 대나무 바구니에 걸어두고 끼니때가 되면 보리쌀에 쌀을 한두 줌 정도 넘고 밥을 하였다. 쌀밥은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먼저 한 그릇을 담고 보리반 쌀반을 썩어 도시락을 쌓고 보리에 쌀이 조금 섞인 보리밥을 우리는 먹었다. 지금도 어려서 먹고 감옥에서도 먹었던 보리밥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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