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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시인특집1 / 1 백석)

역사야톡 2026. 2. 1. 19:55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시인특집1 / 1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이 식민지 여승의 비참한 삶을 그린 '여승'의 일부이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일어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등단하여 1936년 첫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은 사별했고 세 번째 부인과는 이혼했다 21살 연하의 네 번째 부인과는 30년을 해로했다

백석은 시라무라 기코(白村 夔行)로 창씨개명했고 해방이 되자 고향에서 정착하여 오랫동안 금기의 인물이 되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선전선동에 전념했다 1987년 월북 및 재북 작가 해금 조치로 알려졌다

백석은 1936년 함흥여고 영어교사로 재직 중 요릿집에서 만나 김영환에 첫눈에 반했다 백석은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우리에게 이별은 없어"라며 이백의 시구의 '자야(子夜)'를 애칭으로 지어줬다

백석은 기생과의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만주로 떠나 영영 이별을 하였다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남겼다 자야는 해방 이후 요릿집 대원각을 운영했다

자야는 1987년 1,00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1,000억 원 재산이 백석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해요"라며 아무런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기부했다 법정 스님은 기생집 대원각을 사찰 길상사로 개조하고 길상화라는 불명을 지어줬다

백석은 '여승'을 비롯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고향(故鄕), 탕약(湯藥), 모닥불 등을 남겼다 백석과 자야와의 사랑을 다룬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발표했다 자야는 1999년 폐암으로 사망하여 흰 눈위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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