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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라도] 초록 비가 내리는 ‘녹우당’

역사야톡 2019. 6. 13. 16:59

[역사 속 전라도]초록 비가 내리는 ‘녹우당’

 

서일환<상무힐링재활병원 행정원장>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시인이자 작가이며 정치가로 공재 윤두서의 증조부이다. 윤선도의 고조부 윤효정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피해 낙향하여 전라도 해남군 연동(蓮洞)에 터를 잡고 은둔했다.

 

윤선도의 증조부 윤구는 정2품 춘추관 기사관을 역임하고 기묘사화로 삭탈관직됐고 조부 윤의중은 정2품 우참찬을 역임하고 기축옥사로 삭탈관직됐다. 윤선도의 생부 윤유심은 정3품 예빈시부정을 역임했고 양부 윤유기는 종2품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윤선도는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간신 이이첨의 횡포를 규탄하여 유배됐고 인조반정으로 8년 만에 해배됐다. 병자호란으로 다시 유배됐고 해배되자 보길도에서 은둔했다. 효종이 즉위하자 관직에 나갔지만 사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윤선도는 1차 예송논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됐고 해배되자 보길도로 낙향했다. 윤선도는 20여 년의 유배생활과 20여 년의 은둔생활을 반복하며 오우가, 산중신곡, 어부사시사 등을 남겨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망 후에도 추증과 추탈이 반복됐다.

 

▲천연기념물 비자나무숲 우거져

 

녹우당(綠雨堂)은 해남윤씨 종가이며 윤선도의 고택으로 사적 제167호로 지정됐다. 효종이 즉위하여 세자시절 스승이던 윤선도에게 수원에 집 한 채를 하사했다 윤선도는 효종이 승하하자 일부 집을 뜯어 배에 싣고 해남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고산사당(孤山祠堂)은 윤선도를 배향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사당으로 영조로부터 불천위(不遷位)로 지정받았다.

 

녹우당 입구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뒷산에는 천연기념물 제241호 비자나무숲이 우거졌다.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초록 비가 내리는 듯하여 녹우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물전시관에는 국보 제240호인 윤두서자화상과, 보물 제482호인 산중신곡집 등 문화재 3000여 건이 보관됐다.

 

윤선도의 아들 윤인미는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하지만 윤선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벼슬을 하지 못했고 13년 만에 복권되었으나 곧 사망했다. 윤선도의 손자 윤이석과 윤이후는 말년에야 겨우 낮은 벼슬을 할 수 있었다. 윤선도의 증손자 윤두서는 윤이후의 아들에서 윤이석의 아들로 입적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부이다.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당쟁으로 출세가 제한되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서화로 생애를 보낸 화가이다.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동물화 등에 능통했고 실학, 의학, 음악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여도를 만들었다.

 

▲공재 윤두서 불후의 명작 ‘자화상’ 남겨

 

윤두서의 작품이 담긴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은 보물 제481호로 지정됐다. 자신의 초상을 그린 ‘자화상’, 나물 캐는 여인을 그린 ‘채애도’, 백마를 생동감 있게 그린 ‘백마도’, 목기 깎는 장면을 그린 ‘선차도’ 등 60여 점이 수록됐다. 윤두서의 화풍은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에게 계승되어 3대 화가 가문을 이루었다. 윤두서는 정선,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대 화가이며 해남 녹우당에서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다산 정약용의 어머니는 윤두서의 손녀이자 윤덕렬의 딸이며 녹우당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에 녹우당의 서책을 보고 1표2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고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초의선사 등과 예술혼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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