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칠궁 특집 / 7 경우궁)
'경우궁(景祐宮)'은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를 모신 사당이다 순조가 생모의 사당으로 현사궁을 세웠고 이듬해 이전하여 경우궁으로 바꾸었다 1908년 경우궁을 궁정동의 칠궁으로 옮겼다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는 후사가 없었다 정조의 후궁 의빈성씨가 낳은 문효세자가 요절하자 후궁 수빈박씨가 낳은 순조를 효의왕후의 원자로 삼았다 정조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11세의 나이로 순조가 즉위했다
정순왕후는 15세에 66세의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와 며느리인 혜빈홍씨보다 10살이나 어렸다 정조에 이어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였다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지하는 벽파와 손을 잡고 사도세자의 죽음에 동정하는 시파를 탄압했다 정순왕후는 여자 임금이라는 뜻으로 여주(女主)를 자칭하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자행하였고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순조는 정조의 유지에 따라 김조순의 딸과 혼인하여 왕비로 책봉했다 외척 김조순이 정순왕후를 몰아내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시작했다 순조는 안동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기 위해 조만영의 딸을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했다
효명세자는 추존왕 익종으로 순조의 아들이자 헌종의 생부이다 조대비와 혼례를 올린 후에 아버지 순조를 대리청정하다가 22세에 요절했다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효명세자의 빈이자 헌종의 생모인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조대비는 헌종비와 철종비를 가문에서 간택하고 풍양조씨의 세도정치를 계속했다 헌종에 이어 철종마저 후사가 없자 흥선대원군과 모의하여 고종을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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