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칠궁 특집 / 9 의빈궁)
'의빈궁(宜嬪宮)'은 정조의 후궁이며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칠궁에서 제외됐다 순종은 아들이 왕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빈궁의 제사는 왕세자나 왕세자빈의 예법에 따르라고 하여 신위를 땅에 묻어 칠궁에서 제외됐다
의빈성씨는 궁녀로 입궁하여 정조가 선택한 승은후궁이다 정조의 승은을 두 번이나 거절했고 두 번이나 유산했다 의빈성씨는 아들 문효세자가 5세에 요절하자 만삭의 상태로 34세에 사망했다
의빈성씨가 정조의 승은을 거절한 이유는 후사도 없고 총애도 받지 못하고 있던 효의왕후를 배려했거나 승은후궁들의 비참한 말로를 예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정조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문효세자는 정조의 장자이자 순조의 이복형이다 대한제국 수립 후 태자로 추증됐다 아들이 없던 정조는 문효세자가 태어나자 ‘비로소 아비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정조는 후궁인 의빈성씨의 사당인 의빈묘외 아들인 문효세자의 사당인 문희묘를 나란히 세웠다 의빈성씨와 문효세자의 묘는 효창동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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