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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7 '소현세자')

역사야톡 2019. 4. 30. 15:33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7 '소현세자')

 

소현세자(昭顯世子)는 능양군의 적장자이며 아버지가 인조반정으로 왕이 되자 세자에 책봉됐다 정묘호란 당시 분조를 이끌고 전주로 내려가서 민심을 수습했다 병자호란 당시 아버지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예를 올렸다 소현세자는 동생 봉림대군 그리고 삼학사 등 주전파 대신들과 함께 인질이 되어 청나라의 수도인 심양(瀋陽)까지 끌려갔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청나라의 발전된 현실을 인식했고 9년 만에 돌아왔다

 

소현세자는 독일인 신부 아담 샬(Adam Schal)을 만나 천주교 서적 등을 가지고 귀국했다 병자호란으로 인조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를 위협하는 정적이 되었다 아버지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에게 깊은 반감과 불신을 가졌다

 

소현세자는 귀국 2개월 만에 인조의 독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 ~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고 인조실록 46권에 기록됐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이자 왕세손을 대신하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리고 왕세손이 살아 있으면 봉림대군의 정통성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소현세자의 가족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인조의 첩 소용조씨와 김자점이 소현세자빈을 모함했다 소현세자빈 강씨는 사약을 받고 죽었고 강씨의 친정 노모와 4형제가 처형됐다 12살의 첫째 석철, 8살의 둘째 석린, 4살의 셋째 석견 등 소현세자의 세 명의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셋째 석견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 보장왕이 당고종에게 무릎을 꿇었고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에게 붙잡혀 자결했다 그리고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했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폐세자라고 부르며 경기도 고양시에 매장했다 고종 때 폐세자에서 세자로 복권되어 소현묘에서 소경원(昭慶園)으로 격상됐다 슬픈 사연의 소경원은 아직도 민간인이 들어가지 못하고 외로운 무덤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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