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8 '봉림대군')
봉림대군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자 소현세자의 동생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들어갔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이 되어 청나라 심양(瀋陽)에 9년 동안 억류됐다
소현세자는 발전된 청나라의 현실을 인식했고 봉림대군은 청에 대한 원한만 사무쳤다 아버지 인조의 미움을 받던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봉림대군은 청나라에서 석방되어 귀국했다
인조는 '나이 어린 왕세손보다 나이가 있고 기반을 다진 왕자가 왕이 되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뜻으로 '국유장군론(國有長君論)'을 주장했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인 왕세손의 세자 책봉을 주장하는 대신들을 뿌리치고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봉림대군은 아버지 인조가 사망하자 17대 효종으로 즉위했다 효종은 청에 대한 사무친 원한으로 친청파를 몰아내고 반청파를 기용하고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는다는 명분으로 북벌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효종은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백성의 삶에 무심하고 오직 자신의 복수를 위해 군제를 개혁하고 군비를 강화하여 북벌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효종은 즉위 10년 만에 41세 나이로 요절하여 북벌의 허황된 꿈은 실행하지 못했다
효종은 망해버린 명나라를 숭상하고 떠오르는 청나라를 적대했다 효종이 주장한 북벌론은 소중화의 입장에서 군사적 행동이 아닌 정신적인 무장으로 청나라를 물리치자는 허구적인 이론이다
효종의 장지는 수원으로 결정이 되었다가 공력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있는 동구릉으로 최종 결정됐다 현종은 효종릉의 석물이 금이 가자 세종이 묻혀 있는 여주로 천장했다 수원의 효종릉 예정지에는 사도세자와 정조가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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