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향 특집 / 9 고향길)
초등학교는 애향단장이 깃발을 따라 왼쪽 길로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가끔씩 신작로에 먼지를 내고 지나가는 트럭을 뒤따라 달려가기도 하였다 막차가 들어가는 시간에는 올 사람도 없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구경을 나가기도 하였다
중학교는 자전거로 모개잔등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동네 앞으로 강원여객과 광전교통의 시외버스가 하루에 2번 왕복했다 태백 금강 성재 등 안떼에서 사는 여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다녔고 남자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산골정은 고작 오리 거리라서 걷기도 좋았고 자전거 타기도 좋았다 안떼 학생들은 10리에서 20리까지 되는 통학길을 자전거로 다닌다는 것은 여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 다음 날은 비포장도로의 자전거길은 여간 고행이 아니였다
고등학교를 광주로 유학 와서 토요일이 되면 수업이 끝나고 한 달에 한두번씩 고향에 내려왔다 쌀도 가져가고 김치도 가져가고 내려오고 올라가는 길에 친구들도 만나고 그냥 좋았다
영암으로 내려갈 때는 대인동 터미널에서 완도 진도 해남 등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고 영암에서 내려서 태백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했다 버스 의자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차를 타기만 하면 잠이 오는 것은 일종의 멀미이다
광주로 올라갈 때는 마다리 차두와 책보에 싼 김통통을 앞자리에 놓고 제일 뒷자리로 간다 대인동 터미널에서 내리지 않고 말바우 차고지까지 가서 내린다 말바우 차고지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면 자취방까지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한번은 말바우에서 내려서 쌀푸대를 가지고 집에 갔는데 쌀은 없고 콩 수수 녹두 팥 참기름 등 수많은 농산물이 포장된 다른 사람의 푸대가 있었다 양동이나 대인동에서 먼저 내린 사람이 잘못 내린 것이다
기계공고를 다니는 것이 반은 자랑스럽고 반은 부끄러웠다 인문계보다 성적은 좋았지만 실업계 다니는 것이 싫었다 광주와 영암은 다니는 버스는 양동 백운동 남평 금천 나주 영산포 신북 등 동네마다 들렸다가 손님을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대인동 터미널이 인산인해를 이뤄 무등경기장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긴 장대를 좌우로 돌리면서 않아서 한발 한발 앞으로 오리발로 걸어가서 콩나물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 날이 추억이 되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고향특집 #고향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