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조선의 간신 특집 / 9 이이첨)
이인손(李仁孫)은 정1품 우의정을 역임했고 정1품 영의정 이극배, 정2품 형조판서 이극감, 정2품 병조판서 이극증, 종1품 좌찬성 이극돈, 정1품 좌의정 이극균 등 5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극배(李克培)는 세조의 즉위에 공헌하여 좌익공신이 되어 병조판서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했다 성종 때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나이를 이유로 사직하고 73세에 병사했다
이극감(李克堪)은 세자시강원에 들어가 해양대군(海陽大君)을 가르쳤고 형조판서를 역임했고 광성군(廣城君)에 봉해졌다 아들 이세좌(李世佐)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하여 갑자사화로 42세에 사사됐다
이극증(李克增)은 병조좌랑 동부승지 우승지를 거쳐 좌승지에 올랐다 성종 즉위하자 도승지에 이어 이조판서 호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광천군에 봉해졌다 황해도진휼사로 빈민들을 구제했고 63세에 병사했다
이극돈(李克墩)은 성종의 즉위를 도와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었고 좌찬성에 이르렀다 류자광과 더불어 무오사화를 일으켜서 사림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했고 5대손이 예조판서 이이첨이다
이극균(李克均)은 전라도관찰사에 이어 이조판서에 올랐다 우의정이 되어 시폐십조(時弊十條)를 상소했고 좌의정이 되어 연산군의 황음(荒淫)을 지적했다 갑자사화 때 유배되어 사사됐고 5대손이 영의정 이덕형이다
이이첨(李爾瞻)은 무오사화에 원인을 제공한 이극돈(李克墩)의 5대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자랐다 효행으로 참봉이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선조 말에 광해군을 지지하여 대북(大北)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첨은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간 대상성에 이어 광창부원군(廣昌府原君)으로 진봉됐다 정인홍과 함께 인목대비의 폐위를 주장하여 서궁에 유폐했고 영창대군을 숙청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도망가던 중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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