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3 /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어 1)
전남기계공고와 광주상고는 85점 이상, 광주 인문계는 80점 이상, 전남공고, 숭의실고, 금파공고, 전일실고 등은 75점 이상, 동의실고, 한독공고, 담양공고 등은 70점 이상 돼야 진학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공업화 정책으로 광주공고가 전남기계공고로 개칭되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명문고로 발전했다. 기계공고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어 자랑스럽게 학교에 다녔다.
전남기계공고는 1학년이 840명, 전교생이 2,500여 명인 대규모 학교였다. 더구나 기계과가 한 학년에 600명이나 되었다. 동복, 춘추복, 하복, 실습복, 교련복, 체육복을 입고 1주일에 10시간 이상을 실습실에서 보내야 하는 학교가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기계공고 자퇴를 상의하기 위해 토요일만 되면 영암으로 내려갔다. 자퇴는 국민학교만 나오신 부모님 앞에서 사치가 되었다.
1학년 때 선반, 밀링, 용접, 주물, 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습했다. 2학년 때 선박, 밀링, 조립, 용접 대신에 설계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치공구를 설계하는 전공 실습도 녹록하지 않았다. 다행히 2학년에 실기만 하는 의무검정 시험에서 담임 선생님과 기능장의 도움을 받아 연습하여 기계 제도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자격증은 아직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2학년 때 설계전공 8반 실장을 하였다. 선배들은 지각과 조퇴는 물론 결석을 밥을 먹듯 하였다. 결석 없는 8반을 만들기 위해 담임선생님과 협상하여 조퇴 권한을 위임받았다. 방학 하루 전날 어느 학생이 위 천공으로 입원하여 결석하였다. 교장, 교감 담임까지 함께 찾아가 응급차에 싣고 교실까지 데려와서 다시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1년 무결석은 개교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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