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5 / 공돌이가 되어 1)
3학년 2학기부터 현장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진학도, 공무원 시험도 어려운 조건에서 여름방학 이전에 첫 번째로 취업을 하였다. 취업담당 선생님이 오전에는 머리가 길다고 트집을 잡더니, 오후에는 머리가 짧다고 트집을 잡았다. 솔담배 한 보루를 사주고 도장을 받아 지금은 사라진 테니스 라켓을 만드는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의 한일라켓 품질관리과에 입사했다.
하루 일당 2,660원, 한 달 월급 8만 원에 12명이 한 방에 사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연차도 월차도 없던 시절에 기숙사비 2만 원과 제세금을 공제하면 5만 5천 원을 받았다. 기숙사에서는 생일, 제사, 입사, 퇴사 등을 명분으로 매주 5천 원을 각출하여 잔치만 하였다. 한 달 벌어 잔치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퇴근하고 나서 야간에는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혹시나 모를 장래를 준비했다.
한일라켓은 계장, 과장, 부장 등 장자가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사장 친척이고 수위 아저씨가 지각하는 직원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얼차려를 주는 막장 회사였다. 그해 가을 상대원에서 사기막골까지 사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하여 월급의 두 배나 되는 15만 원짜리 테니스 라켓 한 짝을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비싼 테니스 라켓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버렸다.
여름방학 시작되자 전남기계공고 동창들이 하나둘 취업을 오기 시작했고 가을이 되자 열다섯 명이나 되었다. 혼자만 사무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품질관리과 검사원으로 원자재 입고와 완제품 출고는 물론 중간공정을 검사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한일라켓에는 대대장을 하던 야무진 친구가 품질관리과에 입사했다고 소문이 이미 깔려있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나의삶나의인생특집 #공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