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41 / 5.18 단체의 간사가 되어 1)
대학 4학년 때 전남대 투쟁을 책임지면서 남대협을 대표하여 연대사업을 담당했다. 연대사업은 학생을 대표해서 노동·농민·학생 및 청년·종교·전교조·5.18 등 사회 각계각층의 연대와 협력을 하는 업무이다. 당시 전남대는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를 대표하며 남대협과 전대협 등 학간연대를, 총학생회 부회장은 집행부와 단과대학을, 투쟁책임자는 투쟁사업과 연대사업을 담당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동을 목적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사회운동, 종교운동, 교육운동 등 각계 각층으로 투신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투신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위해 존경하는 선배를 찾아갔다. 학생운동에서 투쟁사업과 연대사업을 담당했던 만큼 어디로 투신할 것인가는 동지들 뿐 아니라 선후배들에게도 많은 관심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1환 : 형님, 저도 투신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 :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행사했으나 제일 낮은 곳에서 제일 궂은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환 :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세요
-선배 : 그럼 아무도 가지 않을 길로 가서 3년을 봉사해라
-1환 : 그럼 5.18 단체에 가서 봉사를 하시라는 말인가요?
-선배 : 자네가 결정할 사항이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 기자의 집단사직서 일부이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 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1980년 5월 25일 발표한 '광주시민군 궐기문'의 일부이다.
1980년 5월 18부터 27일까지 계엄군에 희생된 유해 126구가 시청 청소차에 실려와 망월동 3묘역에 매장됐다. 5월 31일 망월동에서 삼우제를 지내면서 자식, 부모, 형제, 자매를 잃은 유족들이 5.18 유족회를 결성했다. 9월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하여 국민성금을 모아 유족과 부상자 및 구속자에게 재해의연금을 전달하고 '앞으로 광주사태 더 이상 거론 말고 상처 치유하자' 라고 엄포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나의삶나의인생특집 #5.18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