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44 / 재야(在野)에서 만난 어른들 1)
윤석동은 1927년 태어나서 심상소학교와 송정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아들 윤상원이 5.18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사망했다. 1982년 아들 윤상원의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1991년 5.18 유족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2019년 사망하여 망월동 묘지에 묻혔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편찬했다.
윤상원(尹祥源)은 1950년 태어나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을 졸업했고 들불야학 강사로 활동했다. 1980년 5.18일 발발하자 시민군 대변인과 투사회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60년부터 1979년까지 20년 동안 일기를 남겼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5.18을 대표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의 옥중시 묏비나리'에 김종률이 곡을 붙인 노래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 넋풀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박기순은 전남대 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들불야학을 설립했고 연탄가스로 22세에 사망했다.
정동년(鄭東年)은 1943년 태어나서 1964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1964년 6.3 한일 굴욕외교 반대시위로 구속되어 제적됐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5.18 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광주광역시 남구청장 등을 역임했다. 운동권의 형님으로 통했고 부인 이명자는 운동권의 누님으로 통했다.
오종렬(吳宗烈)은 1938년 태어나서 광주사범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를 졸업했다. 중등교사로 부임하여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구속됐고 범민련 활동으로 다시 구속됐다. 광주광역시의원,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만인의 스승이자 전국 운동권의 대부로 통했고 아들 오창규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결혼식의 주례를 하셨다.
김근태(金槿泰)는 1947년 태어나서 서울대학교를 입학했다. 유신정권으로부터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과 긴급조치 9호 위반사건으로 수배됐다.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23일간 고문 기술자인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고 구속됐다. 1990년 전민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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