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68 / 대통령 탄핵으로 박사학위(博士學位) 빋아 1)
1980년 5월 어느 날 중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방위들이 달려갔다. 5·18 시민군이 영암까지 오자 방위들이 학교 뒤로 도망가서 숨었다고 하였다. 그해 가을 연합고사를 보고 다음 해 봄에 전남기계공고에 입학했다.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공단으로 취업을 나갔다. 한 달 월급 8만 원에 기숙사비를 공제하고 담뱃값에 기숙사 같은 방에 서는 동료의 생일, 입사, 퇴사, 기타의 행사 때마다 5,000원을 걷으면 정말 주머니에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총무과에서 신입직원 월급은 고졸은 8만 원, 대졸은 32만 원 한다고 하였다. 10년간 일을 한다면 고졸은 960만 원, 대졸은 3,84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결국, 대졸은 고졸보다 10년간 일하면 2,880만 원을 더 받게 되었다. 당시 전남대학교 등록금은 35만 원이라 하였다.
4년간 등록금 320만 원(40만 원*8학기)과 4년간 생활비 1,440만 원(30만 원*48개월)을 더하면 1,760만 원이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였다. 그럼 대학을 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1984년 2월 졸업식을 하고 7월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사직을 하고 무작정 광주로 내려왔다. 체력장 접수 마지막 날이라고 하여 거금을 들여 급사진을 찍고 체력장을 접수하고 가을에 체력장을 하였다. 7월 초부터 11초까지 죽을 각오로 공부하여 학력고사를 치렀다.
국사선생이 되고 싶어 국사교육과를 알아봤는데 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국어국문과는 굶어 죽는다고 하여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했다. 재수생으로 입학하여 5년 만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여 석사급 학사라는 농담을 받았다.
백수생활 10년 만에 동아병원에 입사했다. 병원 간부에게 대학원 등록금 일부를 지원하는 복지혜택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동아병원 입사 5년 만에 우리들병원으로 옮겨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최고관리자과정에 입학했다. 26주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등록금 300, 원우회비 300, 교통비 300, 기타 300 등 모두 1,200만 원을 지출했다. 결국 서울로 박사과정은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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