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삶 나의 인생 특집 71 / 역사야톡(歷史夜talk) 11권까지 1)
2012년 5월 어느 날 연탄구이 집에서 후배와 돼지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셨다. 후배는 멋진 스마트폰을 가져와서 폴더폰을 쓰고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조언을 하였다. "형님은 말빨이 기가 막히닌가 그것을 글로 써서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십시오."라며 스마트폰과 카카오스토리를 설명했다. 5월 어느날 후배의 권유로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했다.
첫날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류사오치(劉少奇)의 '수양의 강의록'을 읽고 <26년 전에 읽었던 책을 고서점에서 어렵게 구입해서 다시 읽습니다. 서문의 글귀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세계는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 비판만으로는 변화되지 않는다">라는 글을 올렸다.
어느날은 다음의 글을 올렸다. 1924년 세워진 영암 장천공립 보통학교를 51회로 졸업을 했다. 지금까지 84회 5,000여 명이 졸업했다. 모교 뒤에 보이는 조그마한 바위는 새악바위, 글씨바위, 부엉이바위 등 사연만큼 이름도 많다. 고려 충렬왕 때인 1344년에 만든 보물 제1309호 엄길리 암각매향명이다. 이 바위에 써진 글씨에는 600년 후에 서일환이 태어난다는 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암각매향명에는 무수한 전설이 남았고 이젠 장천초등학교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기억될 뿐이다.
어느날은 다음의 글을 올렸다. 일설에 어느 날 군청에서 귀한 손님 여덟 명이 왔다. 면장은 가게를 모두 뒤졌지만, 맥주가 고작 한 병 나왔다. 그래서 한 병으로 여덟 잔을 따랐다. 다른 일설에는 옴천면장이 강진읍에서 열린 행사를 끝내고 하루에 두 대뿐인 버스를 타기 위해 급하게 맥주를 따르다가 한 병으로 여덟 잔을 따랐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옴천면장 맥주 따르대끼'는 과거 가난의 상징이자 변방의 촌놈들의 인사말이 되었다.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하고 한 달쯤 되어 글을 올렸는데 친구가 글이 재미있다고 자기에게 팔라고 한다. 정지상도 아니고 김부식도 아닌데 막걸리 한 병에 글을 팔았다. 다른 사람의 카카오스토리를 보았다. 먹고, 마시고, 여행가서 꽃과 풍경을 올리고, 자녀와 손주의 사진을 올리는 일상의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매일 동일한 시간에 비슷한 분량의 역사를 소재로 글을 올리기로 하였다. 다시 카카오스토리에 글을 남기기는 아깝다는 친구의 권유로 출판을 하기로 하였다. 또다시 카카오스토리에만 올리기는 아깝다는 친구의 권유로 스토리채널, 네이버블로그, 다음티스토리, 페이스북 등에도 함께 글을 올렸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행복한요양병원 #나의삶나의인생특집 #역사야톡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