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고려특집 3 / 인종과 이자겸의 난)
17대 인종(仁宗)은 예종의 장남으로 7세에 태자가 되어 외조부 이자겸이 옹립하여 14세에 즉위했다 이자겸은 셋째 딸과 넷째 딸을 인종과 혼인시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자겸은 척준경과 더불어 인종을 축출하려 반란을 일으켰다
인종은 이자겸과 척준경이 사이가 멀어지자 척준경을 앞세워 이자겸을 진압했다 묘청이 개경에서 서경으로 도읍을 옮길 것과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요구하며 일으킨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이자겸(李資謙)은 종1품 문하시중 이자연의 손자이자 정2품 상서좌복야 이호의 아들이다 조부인 이자연이 세 명의 딸을 모두 문종에게 시집 보내 고려 최고의 욏척이 되었다 이자겸은 음서로 벼슬길에 올라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자겸은 누이 장경궁주가 12대 순종의 왕후가 되어 노비와 사통하여 폐비되자 몰락했다 이자겸의 둘째 딸 순덕왕후가 16대 예종의 왕후가 되어 인종을 낳자 다시 출사했다 예종의 왕위계승을 두고 동생과 아들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양분됐다
예종은 이자겸을 신임하여 14세의 태자 인종에게 양위하자 이자겸은 절대권력을 차지하고 종실 세력을 축출했다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거란족의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자겸은 반대파를 숙청고 금나라와 사대관계를 맺었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 자격으로 섭정하며 셋째딸과 넷째딸을 인종의 왕후로 삼고 스스로 지군국사(知軍國事)라 자칭했다 인종이 외조부 겸 장인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이씨가 왕이 된다는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을 내세워 반격했다
이자겸은 척준경에게 체포되어 아내와 함께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됐다 일곱 명의 아들은 유배됐고 2명의 딸은 폐비됐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뜻으로 조기를 진상하여 굴비(屈非)가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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