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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7 / 제주4.3항쟁 & 여수순천사건)

역사야톡 2024. 12. 16. 19:57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이승만 특집 7 / 제주4.3항쟁 & 여수순천사건)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 미군정 통치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대는 탄압중지와 5.10 단독선거 반대, 통일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며 제주 4.3 항쟁을 일으켰다

이승만은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토벌대를 파견했다 계엄군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고 잔인하게 탄압했다 1948년 12월 31일 계엄령이 해제됐다

1949년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1948년 한 해 동안 1만 50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그중 80%가 토벌군에 의해 사살됐다"라고 보고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4.3 사건 관련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즉결 처분했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한라산의 금족(禁足)이 해제되는 7년 7개월간 미군사고문단의 지도를 받은 토벌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8만 명이 제주도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1948년 10월 19일 이승만은 여수와 순천에 주둔하던 조선국방경비대 14연대에 제주 4.3 항쟁에 대한 진압을 지시했다 14연대 2,000여 명의 군인들이 동족상잔을 이유로 출병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 事件)을 일으켰다

14연대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 등 반란군이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라며 여수 순천 벌교 보성 고흥 광양 구례 곡성을 점령했다 이승만은 여수 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을 명령했다

반란군 4,000여 명은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이현상 사령관의 남부군에 합류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 1955년 4월 1일 지리산 금족령 해제되는 여순사건 진압과정에서 군인 2,700명을 비롯해 민간인 등 약 1만 2,000명이 희생됐다

이승만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일본제국이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치안유지법을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강력한 반공체제를 구축했다 여순사건 당시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박정희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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