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10 '예송논쟁')
인조는 3명의 부인에게서 6남 1녀를 낳았다 정비 인렬왕후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낳았다 폐위된 후궁 소용조씨는 숭선군과 낙선군을 낳았다 인렬왕후가 죽자 장렬왕후를 계비로 맞이했다 장렬왕후는 인조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후사도 없었다
장렬왕후는 인조보다 29살, 소현세자보다 12살, 봉림대군보다 5살 어렸다 인조가 사망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자의대비(慈懿大妃)가 되었다 현종 때 효종이 사망하고 숙종 때 효종비가 사망하자 상복(喪服)을 입는 기간을 두고 2차례의 예송논쟁이 일어났다
사대부는 송나라 주자가 편찬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관혼상제를 치렀다 왕은 성종 때 강희맹이 편찬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라 관혼상제를 치렀다 하지만 효종처럼 장자가 아닌 차남이 왕이 되어 사망할 경우 어머니의 상복기간을 규정하지 않았다
1차 기해예송은 효종의 상례이며 계모 자의대비가 아들 효종의 상복을 '차자의 예'로 입느냐 '장자의 예'로 입느냐의 논쟁이다 신권을 강조하는 서인은 차남으로 보았고 왕권을 강조하는 남인은 장남으로 보았다
결국 기해예송은 송시열 등 서인이 승리하여 서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윤휴 등 남인은 몰락했다 윤선도는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서인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역적죄로 유배를 당했다
계모도 왕의 어머니라는 서인과 계모는 왕의 신하라는 남인의 논쟁이며 조선왕은 명황제의 신하라는 서인과 조선왕은 조선의 임금이라는 남인의 논쟁이다 서인은 효종은 차남이라고 해석했고 남인은 왕위를 계승한 장자라고 해석했다
2차 갑인예송은 효종비의 상례이며 계모 자의대비가 '차부자의 예'로 입느냐 '장자부의 예'로 입느냐의 논쟁이 다시 재현됐다 결국 갑인예송은 윤휴 등 남인이 승리하여 남인이 권력을 독점하고 송시열 등 서인은 몰락했다
현종이 사망하자 13세의 숙종이 즉위했다 예송논쟁으로 효종과 현종의 적통을 그르쳤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송시열은 끝까지 효종은 차남이라고 주장했다 숙종은 '스승만 알지 임금은 모른다'며 송시열을 유배를 보냈다
예송논쟁은 반정으로 권력을 탈취한 인조와 독살당한 소현세자의 아들을 대신하여 즉위한 효종의 정통성에 관한 시비로 시작됐다 결국 이인좌가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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