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나의 애창곡 / 7 낭주골 처녀)
<월출산 신령님께 소원 빌었네 천왕봉 바라보며 사랑을 했네 / 꿈 이뤄 돌아오마 떠난 그 님을 오늘도 기다리는 낭주골 처녀 / 노을 지면 오시려나 달이 뜨면 오시려나 / 때가되면 오시겠지 금의환향 하시겠지>
1972년 전남 영암의 ‘낭주골 처녀’를 소재로 전순남이 작사하고 박춘석이 작곡하여 이미자가 노래한 '낭주골 처녀'이다 ‘낭주골 처녀’는 서울로 떠나간 총각을 애타게 기다리는 처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전라도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자 이촌향도 현상이 진행됐다 수많은 영암의 총각들이 용당리 선창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목포역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낭주골 처녀'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애절한 사연이다
고려 태조가 전주에 설치된 안남도호부를 설치했다 안남도호부를 성종 때 낭주로 옮겼고 현종 때 고부로 옮겼다 낭주(朗州)는 지금의 영암 지역으로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최경창 신희남 등의 출신지이다
한석봉은 개성에서 태어나서 신희남의 제자가 되었다 영암 출신인 신희남이 붕당에 염증을 느끼고 영암으로 낙향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스승을 따라 영암으로 함께 내려왔다 어머니가 영암에서 떡장사를 하며 아들을 천하제일의 명필로 키웠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임진왜란 당시 최고의 의병장으로 선조의 미움을 받아 영암에서 유배를 살았다 문곡 김수항은 1차 예송논쟁에 승리하여 영의정이 되었으나 2차 예송논쟁에 패배하여 영암으로 유배됐다
영암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국립공원 월출산과 왕인박사 유적지를 비롯하여 영산호 도갑사 천황사 영보정 회사정 구림마을 어란 낙지 갈낙탕 무화과 대봉 산자 등이 유명하다 내 고향은 영암 산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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