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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3 ‘친명반청’)

역사야톡 2019. 4. 23. 18:2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3 ‘친명반청’)

 

명나라의 14대 황제 만력제는 30년 동안 정사를 포기했다 만력제의 아들인 15대 태창제는 즉위 29일 만에 급사했다 태창제의 아들인 16대 천태제는 한자를 모르는 까막눈으로 15세에 즉위하여 환관 위충헌에게 정치를 떠맡기고 23세에 요절했다

 

천태제의 동생인 17대이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환관 위충헌을 처단했다 하지만 북쪽에서 만주족 후금(後金)이 침략했고 남쪽에서 이자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베이징이 함락되자 숭정제는 자금성 뒷산에 올라가 목매달아 자살하여 명나라는 멸망했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만주에 흩어져 있던 여진족을 통합하여 만주족(滿洲族)으로 고치고 1616년 후금(後金)을 건설했다 누르하치는 여진어로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11년간 재위하면서 팔기제도를 창설했다 산해관을 공격하다가 사망했다

 

청태종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이자 후금의 칸이며 청의 황제이다 1636년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꾸고 몽골과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산해관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사망했다

 

청세조는 홍타이지의 9번째 아들이자 3대 황제이다 삼촌 도르곤을 섭정왕으로 삼고 이자성을 처단하고 베이징을 점령했다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이며 살아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죽어서는 부관참시됐다

 

선조는 명나라의 멸망도 여진족의 부활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는 태양 명과 뜨는 태양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中立外交)를 펼치며 실리를 취했다 광해군은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전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였다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후금의 공격을 받자 조선의 국왕 광해군에게 지원병을 요청했다 광해군은 도원수 강홍립에게 정세를 파악하여 상황에 맞춰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강홍립은 후금과 휴전을 맺었고 명군에게 식량을 지원했다

 

인조는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버린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켰다 조선은 ‘중화를 받들고 오랑캐는 다스린다’는 존화양이에 입각해 친명배금(親明排金)의 외교노선을 펼쳤다

 

인조는 한족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화양이(尊華攘夷)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존명배청(尊明排淸)을 표명했다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원인이 되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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