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 산, 바다, 호수 ‘3경’과 의향, 예향, 다향 ‘3보향’의 ‘보성’
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요양병원 본부장
보성군(寶城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인구는 4만 명 정도이다. 군청 소재지는 보성읍이고 벌교읍을 비롯해 10면을 담당한다. 서쪽은 장흥군, 북서쪽은 화순군, 북동쪽은 순천시, 남동쪽은 고흥군과 면한다. 남쪽은 장흥반도와 고흥반도로 둘러싸인 보성만(寶城灣)이 자리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백제 근초고왕 때 병합되어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렀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식 관료 제도를 수용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됐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나주부 보성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일부가 보성군에 편입됐다. 1937년 벌교읍으로, 1940년 보성읍으로 승격됐다.
보성강은 용추계곡에서 발원하며 다목적댐인 주암호에 머물다가 곡성군 압록(鴨錄)에서 섬진강에 합수한다. 보성강에는 대한민국 최고령 수력발전소이자 전라남도 유일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주암호와 상사호를 연결하여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활용한다.
보성에 오면 보성 9경을 꼭 구경해야 한당께 잉
보성에는 푸른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보성차밭,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제암산 등 구경하고 싶은 9경(九境)이 있다. 1경 보성차밭, 2경 한국차박물관, 3경 태백산맥 문학관, 4경 율포해수욕장, 5경 비봉 공룡공원, 6경 제암산, 7경 용추계곡, 8경 대원사, 9경 서재필 기념관 등을 9경이라 한다.
보성을 예로부터 ‘3경 3보향’이라 하였다. 임금 제(帝) 자 모양의 제암산, 제석산, 존제산 등 아름다운 산(山), 보성만의 청정 바다(海), 주암호와 상사호 맑은 호수(湖水)가 어우러진 ‘3경(三境)’과 충의 열사의 의향(義鄕), 판소리의 예향(藝鄕), 녹차향 가득한 다향(茶鄕)의 ‘3보향(三寶鄕)’이라 한다.
보성은 나철, 박광전, 박유전, 서재필, 안규홍 등의 고향이다. 나철은 대종교를 창설하여 독립투쟁의 정신적 구심점을 만들었다. 박광전은 호남 5현의 한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이다. 박유전은 판소리 유파의 하나인 서편제의 창시자이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직후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벌였다.
벌교, 좌우 이념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태백산맥의 배경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목포 항도여중 여학생이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벌교 출신 박기동이 시를 썼고 동료 교사 안성현이 곡을 붙여 ‘부용산’이 완성됐다.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곡이 되었다.
1908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일제가 낙안군을 폐지하여 일부는 보성군 벌교면에, 일부는 순천군에 편입했다. 벌교는 1929년 경전선 철도가 지나면서 벌교역을 중심으로 일제 수탈의 현장이 되었고 1937년에 벌교읍으로 승격됐다. 지금도 보성읍과 별개로 벌교읍 중심으로 독자적인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다. 벌교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꼬막이 유명하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말이다. 안규홍이 조선 여인을 희롱하던 일본 헌병을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안담살이 의병장이 되어 26차례나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고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순국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벌교를 배경으로 해방 이후의 좌우 이념 대립과 민중의 한을 표현한 조정래의 대하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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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요양병원 본부장
보성군(寶城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인구는 4만 명 정도이다. 군청 소재지는 보성읍이고 벌교읍을 비롯해 10면을 담당한다. 서쪽은 장흥군, 북서쪽은 화순군, 북동쪽은 순천시, 남동쪽은 고흥군과 면한다. 남쪽은 장흥반도와 고흥반도로 둘러싸인 보성만(寶城灣)이 자리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백제 근초고왕 때 병합되어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렀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식 관료 제도를 수용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됐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나주부 보성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08년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일부가 보성군에 편입됐다. 1937년 벌교읍으로, 1940년 보성읍으로 승격됐다.
보성강은 용추계곡에서 발원하며 다목적댐인 주암호에 머물다가 곡성군 압록(鴨錄)에서 섬진강에 합수한다. 보성강에는 대한민국 최고령 수력발전소이자 전라남도 유일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주암호와 상사호를 연결하여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활용한다.
보성에 오면 보성 9경을 꼭 구경해야 한당께 잉
보성에는 푸른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보성차밭,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제암산 등 구경하고 싶은 9경(九境)이 있다. 1경 보성차밭, 2경 한국차박물관, 3경 태백산맥 문학관, 4경 율포해수욕장, 5경 비봉 공룡공원, 6경 제암산, 7경 용추계곡, 8경 대원사, 9경 서재필 기념관 등을 9경이라 한다.
보성을 예로부터 ‘3경 3보향’이라 하였다. 임금 제(帝) 자 모양의 제암산, 제석산, 존제산 등 아름다운 산(山), 보성만의 청정 바다(海), 주암호와 상사호 맑은 호수(湖水)가 어우러진 ‘3경(三境)’과 충의 열사의 의향(義鄕), 판소리의 예향(藝鄕), 녹차향 가득한 다향(茶鄕)의 ‘3보향(三寶鄕)’이라 한다.
보성은 나철, 박광전, 박유전, 서재필, 안규홍 등의 고향이다. 나철은 대종교를 창설하여 독립투쟁의 정신적 구심점을 만들었다. 박광전은 호남 5현의 한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이다. 박유전은 판소리 유파의 하나인 서편제의 창시자이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직후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벌였다.
벌교, 좌우 이념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태백산맥의 배경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목포 항도여중 여학생이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벌교 출신 박기동이 시를 썼고 동료 교사 안성현이 곡을 붙여 ‘부용산’이 완성됐다.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곡이 되었다.
1908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일제가 낙안군을 폐지하여 일부는 보성군 벌교면에, 일부는 순천군에 편입했다. 벌교는 1929년 경전선 철도가 지나면서 벌교역을 중심으로 일제 수탈의 현장이 되었고 1937년에 벌교읍으로 승격됐다. 지금도 보성읍과 별개로 벌교읍 중심으로 독자적인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다. 벌교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꼬막이 유명하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말이다. 안규홍이 조선 여인을 희롱하던 일본 헌병을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안담살이 의병장이 되어 26차례나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고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순국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벌교를 배경으로 해방 이후의 좌우 이념 대립과 민중의 한을 표현한 조정래의 대하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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