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일제침략 특집 / 9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백지화했다 고종의 친정과 더불어 권력을 잡은 명성황후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나라를 끌어들여 일본의 계획에 훼방을 놓았다
명성황후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청일전쟁 직후 삼국간섭이 일어나자 배일정책을 강화하고 친러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은 친러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여우사냥’을 계획했다
1895년 8월 20일 주한공사 미우라가 일본인 낭인을 고용하여 건청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에게 폐출조서에 성명을 강요했다 그리고 김홍집 친일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친일내각은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하는 단발령을 시행하는 급진적인 갑오개혁을 추진했다 명성황후 폐위와 단발령에 반대하며 친일세력 축출을 목표로 유인석 신돌석 이강년 최익현 임병찬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친일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생활했다 농상공부협판 이범진, 시종원경 이재순, 시종 임최수, 참령 이도철, 의관 안경수 등이 춘생문을 통해 입궐하여 고종을 궁 밖으로 탈출시키려고 시도했다
의관 안경수가 변절하여 외부대신 김윤식에게 밀고하여 춘생문 사건은 실패했다 임최수와 이도철은 사형을 당했고 이범진은 망명했고 이재순은 구속됐다 일본은 을미사변 관계자들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전원 석방했다
친러파들은 춘생문 사건이 실패하자 고종에게 안전을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새벽 극비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아관파천으로 친일파가 잠시 물러나고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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