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6 ‘병자호란’)

역사야톡 2019. 4. 28. 17:29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인조 특집 6 ‘병자호란’)

 

1636년 홍타이지가 국호를 후금에서 대청(大淸)으로 고치고 '군신의 의'를 요구하자 인조는 전쟁을 선포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백성으로부터 민심을 잃었고 친명배금 정책으로 정묘호란까지 겪었다

 

홍타이지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위해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조선은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 식량 우물 등을 없애고 산성에서 적병을 막는 청야견벽(淸野堅壁)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청나라는 한양점령과 인조체포를 목표로 산성을 피해 우회로를 통해 7일 만에 한양까지 진격했다 결국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봉림대군은 강화도로 피난갔다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켜 망하는 것이 옳다는 김상헌을 중심으로 한 척화론(斥和論)과 화친을 맺어 백성이 도탄에 빠지지 않게 하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자는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론(主和論)이 대립했다

 

4만 명의 조선 병사가 쌍령(雙嶺)에서 6천 명의 청군 기마병에게 대패했다 결국 남한선성이 고립무원의 지경이 되자 인조는 항복했다 쌍령전투는 임진왜란의 칠천량해전, 한국전쟁의 현리전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패전 중의 하나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청나라에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의 예를 올렸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 60여만 명의 조선의 백성들이 심양으로 끌려갔고 배상금 명목으로 막대한 세폐를 조공했다

 

조선에서 오랑캐를 징벌하자는 북벌론이 대두됐고 청의 앞선 문물을 수용하고 배워야 한다는 북학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조선은 병자호란의 패배로 300년 동안 청나라의 치욕적인 속국이 되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인조특집 #병자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