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2 처용가)
처용가(處容歌) / 처용(處容)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돌아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으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 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남북국 시대에 신라 헌강왕이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다 갑자기 운무(雲霧)가 자욱이 끼었다 신하들이 용왕이 조화이니 좋은 일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이 용왕을 위해 절을 짓도록 명하자 운무가 걷혔다
헌강왕은 이곳을 개운포(開雲浦) 라고 하였다 49대 헌강왕은 경문왕의 아들이자 정강왕의 형이며 진성여왕의 오빠이다 헌강왕 때 지배층의 분열로 국력이 쇠퇴하고 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용의 아들 처용이 왕을 따라 서라벌까지 와서 정사를 도왔다 왕은 처용을 미녀와 혼인시켜 십칠 관등 가운데 아홉째 등급의 벼슬인 급간(級干) 벼슬을 내렸다
역신(疫神)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하여 밤에 몰래 안방에 들어가서 동침을 하였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역신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며 처용의 그림만 봐도 안방에 침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백성들은 처용의 화상을 걸어 사귀를 물리치고 좋은 일을 불러들였다 처용이 부른 노래가 처용가(處容歌) 라고 하고 처용이 추던 춤을 처용무(處容舞) 라고 한다 헌강왕이 개운포에 지은 사찰을 망해사(望海寺) 라고 한다
48대 경문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의 주인공이자 49대 헌강왕, 50대 정강왕, 51대 진성여왕의 아버지이다 진성여왕은 음란하여 색욕에 빠져 기강이 무너졌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출연하여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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