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청나라 특집 / 4 제3대 청세조 순치제)
홍타이지가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황제의 형제와 아들로 구성된 의정왕대신회의(議政王大臣會議)를 개최했다 황제의 후계자로 누르하치의 차남 '다이샨', 12남 '아지거', 14남 '도르곤', 홍타이지의 장남 '후거' 등이 경쟁했다
의정왕대신회의에서 누르하치의 14남 '도르곤'과 홍타이지의 장남 '후거'를 황제의 후보로 압축했다 도르곤은 만주족의 전통인 형제승계를 주장했고 후거는 부자승계를 주장했다
의정왕대신회의에서 황실의 최고 수장인 다이샨은 도르곤과 후거를 배제하고 홍타이지의 아홉 번째 아들인 '푸림'을 후계자로 선출하여 '순치제'로 옹립했다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아들이자 홍타이지의 이복형으로 황형(皇兄)으로 불렀다
청나라 제3대 황제인 청세조 '순치제'는 초대 황제 누르하치의 손자이자 2대 황제 홍타이지의 아홉 번째 아들이다 순치제는 청나라에서 중국 대륙을 점령한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순치제는 섭정왕이자 숙부인 도르곤을 앞세워 할아버지 누르하치와 아버지 홍타이지가 넘지 못한 산해관을 넘어 반란군 이자성을 섬멸하고 중원을 장악했다 순치제는 섭정왕 도르곤이 사망하자 묘호와 시호를 추탈하고 친정을 시작했다
순치제는 명나라의 잔존 세력에 건국한 남명(南明)을 궤멸하고 명나라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또한 중국을 완전히 통일하고 청나라 최고의 태평성대인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발판을 만들었다
순치제는 반청 세력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강경책과 한족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는 유화책을 동시에 사용하여 극소수의 만주족이 절대다수의 한족을 지배했다 또한 예수회 선교사를 등용하여 서양 문화를 수용했다
<왕으로 산 18년 자유라곤 없었노라 / 산들에서 크게 싸워 몇 번이나 쉬었던가 / 내 이제 그만 두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 만가지 근심걱정 나하곤 무관하네> 순치제가 썼다고 하는 출가시의 끝부분이다
순치제는 황태자를 선출하는 저위 밀건법(儲位 密建法)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저위 비건법은 황제가 사망하면 자금성 황제 침전인 건청궁의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에 적어 놓은 유저에 따라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이다
순치제는 사망하자 저위 밀건법에 따라 강희제가 후계자로 결정됐다 순치제는 즉위 18년 만에 24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묘호는 청세조(淸世祖)이고 시호는 순치제(順治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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