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문학인특집 9 / 민주작곡가 ‘윤이상’)
윤이상(尹伊桑)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경남 통영에서 성장했다 일본 오사카음악대학에서 음악을 배웠다 하지만 조선에서 강제로 징집되어 끌려온 조선인들을 보고 정치적 의식을 갖게 되었다
첫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발표했다 다시 일본으로 갔으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구속됐다 해방이 되자 통영여고에서 음악교사로 지내면서 고려대학교 교가를 작곡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했고 휴전이 되자 서울대 덕성여대 경희대 숙명여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작품을 발표했다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떠나 서베를린에 정착하여 공부했다
유럽에서 불교를 주제로 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와 ‘관현악곡 ’예악‘을 초연하여 국제적인 음악가로 주목을 받았다 독일식 이름은 Isang Yun(이상 윤)이며 서독과 독일에서 활동했다
1963년 4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이 그려진 고구려 벽화 ‘사신도’를 통해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북한을 방북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친북행위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간첩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하여 실패했고 유럽의 음악인들이 박정희 정권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자 2년 만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다 윤이상은 1969년 대한민국 국적을 박탈당하자 서독으로 국적을 변경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으로 선정됐다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 실내악곡 ‘동서의 단편’, 교성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1백 50여 편을 남긴 윤이상의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금지가 되었고 다시는 입국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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