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사도세자 특집 / 1 사도세자의 어머니들)
영조의 정비(正妃)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연잉군이 손이 곱다고 하자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아서 곱다고 대답하여 무수리였던 시어머니 숙빈최씨를 깔봤다는 이유로 연잉군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정성왕후는 연잉군이 왕세제에 이어 영조로 즉위하자 세제빈(世弟嬪)에 이어 왕비(王妃)로 책봉됐다 정빈이씨 소생인 효장세자와 영빈이씨 소생인 사도세자를 친아들처럼 아꼈다 조선의 역대 왕비 중 가장 오래 재임하고 64세에 사망했다
영조의 계비(繼妃)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정성왕후가 사망하자 부왕 숙종의 유지에 따라 66세의 영조와 15세의 정순왕후가 혼인했다 영조가 사망하고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王大妃)로 승격했다
정순왕후는 정조가 사망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승격하여 수렴청정을 하였다 노론 벽파를 등용하여 소론 시파와 남인을 축출하고 천주교 금지령을 내렸다 정조의 유지에 따라 김조순의 딸을 순조의 왕비로 책봉했다
영조의 후궁(後宮) 정빈이씨(靖嬪李氏)는 효장세자의 생모이다 8세에 입궁하여 연잉군의 첩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자 종5품 소훈이 되었으나 27세에 요절했다 아들이 효장세자로 책봉되자 소훈에서 정빈(靖嬪)으로 추증됐다
정빈이씨는 사후에 영조의 명으로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자 정조의 양모가 되었다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됐고 정조가 즉위하여 양어머니 정빈이씨의 사당을 지어 연호궁이라 하고 칠궁(七宮)에 배향했다
영조의 후궁(後宮) 영빈이씨(暎嬪李氏)는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이며 정조의 조모이다 6세에 궁녀가 되어 31에 영조의 승은을 입어 5녀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다 39세에 사도세자를 낳자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의 양자로 입적했다
영빈이씨는 남편의 편집증으로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영조의 명으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효장세자의 승통을 이을 것을 명했다 손자 정조에 의해 칠궁(七宮)에 배향됐다
영조의 후궁(後宮) 숙의문씨(淑儀文氏)는 영조의 며느리인 현빈조씨의 궁녀로 입궁하여 현빈조씨가 사망하자 빈전을 찾은 영조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정4품 소원에 책봉됐고 다시 종2품 숙의로 진봉됐다
숙의문씨는 김상로 등과 결탁하여 '사도세자가 모반을 꾀한다' 라고 고변하여 사도세자를 죽임에 이르게 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임을 후회하고 김상로를 유배하고 복직했고 정조가 즉위하여 김상로의 관작을 삭탈했다
영조의 후궁(後宮) 귀인조씨(貴人趙氏)는 10세에 입궁하여 화유옹주를 낳고 종2품 숙의(淑儀)에 진봉됐고 정조가 즉위하여 종1품 귀인(貴人)에 진봉됐다 귀인조씨의 묘는 딸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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