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선조특집 / 7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조선은 전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명은 청으로 교체됐고 일본은 도쿠가와 바쿠후가 수립됐다
한산대첩은 1592년 8월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경상도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이다 학익진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사용하여 한산도 대첩이라고 한다
이순신은 한성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정3품 수군절도사에 이어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라 임진왜란을 23전 23승을 이끌었다 선조의 미움을 받아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여 선무공신 1등과 영의정에 추증됐다
행주대첩은 1593년 3월 권율 장군을 비롯해 의병장 김천일, 승병장 처영 등이 지휘하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경기도 고양현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싸워 이긴 전투이다 행주대첩에서 행주치마가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권율은 영의정 권철의 아들이며 이항복의 장인이다 46살이 되어서야 과거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총사령관인 정2품 도원수로서 행주대첩의 승리를 견인했다 선무공신 1등과 영의정에 추증됐다
1차 진주성전투는 1592년 11월 진주목사 김시민과 의병장 곽재우가 연합하여 왜군을 물리친 전투이며 진주대첩이라 한다 2차 진주성전투는 1593년 7월 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이 왜군에게 패배했고 논개가 게야무라 로쿠스케와 함께 투신했다
김시민은 충청도 목천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진주 판관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 목사로 승진했다 1차 진주대첩에서 대승을 하였으나 총탄에 맞아 3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선무공신 2등과 영의정에 추증됐다
권율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광주목사로 금산 이치전투에서 승리하고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다 행주대첩에서 승리하고 도원수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무공신 1등에 봉해졌고 영의정에 추증됐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의령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다 붉은 비단 철릭(帖裏)을 입고 백마를 타서 유격전을 벌여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불렸다 이순신이 투옥되고 김덕령이 옥사하자 사직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세자 광해군으로부터 호익장군의 호를 받았고 이어서 선조로부터 초승장군의 군호를 받았다 선조의 질투를 받아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무고로 서울에 압송되어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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